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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배뱅이굿 ‘이은관’ 편 (2) - 왔구나 배뱅이가 왔구나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781
이은관 육성 // “무대에 나가서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날 그때 내 잊어버리지도 않아. 왔구나, 왔구나. 이은관이 배뱅이가 다시 살아 왔구나, 왔구나... 울었어요. 그래가지고 다시 내가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못 헌 줄 알았어요, 내가.”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서도소리 – 배뱅이 굿 ‘이 은 관’.
제2화, “왔구나 배뱅이가 왔구나”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첫 스승, 이인수 >

#1. 1940년대 초반, 황해도 황주권번

(가야금 연주 소리)
이은관 // 안녕하세요? 이인수 선생님.
강원도 이천서 온 ‘이은관’이라고 헙니다.
선생님께 소릴 배우고 싶습니다.
이인수 // 음.. 그럼 한마디 해보게.

20대 은관 // 제 나이 스물다섯에 황주 권번에서 첫 스승을 만났어요.
일제강점기의 기생조합인 권번에서 가르친다 하면
소리의 대가로 인정받던 시절입니다.
이인수 선생님께는 평안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던 서도소리를
배우고 싶었어요. 특히 ‘배뱅이굿’을 잘하시니 더 좋았지요.
소리하는 사모님도 계신 첫 만남에서 ‘창부타령’을 불렀습니다.

(이은관 - <창부타령>)
이인수 // 거 목소리 좋다!
사모님 // 타고난 목청이야요.
이인수 // 그래. 여기서 소리 배워라.
이은관 // 정말요?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제가 가진 게 없습니다. 수강료 드릴 돈도....
이인수 // (헛기침 소리) 없으면 말아야지.
사모님 // 그럼 지낼 데는 있고?
이은관 // 그것도...
이인수 // (웃음소리) 사랑방을 쓰면 되겠네.
이은관 // 선생님, 제가 선생님 뒷바라지하고 청소도 허면서
소리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20대 은관 // 그 시절에는 곧잘 살아도 남는 이부자리가 없었어요.
겨울에 자다 추워서 깰 때면
어두침침한 달밤에 한참을 앉아 다짐했습니다.

(슬픈 느낌 음악)
이은관 // (다짐) ‘소리 배우려면 이까짓 걸 못 참겠어.
아버지, 지갑에서 돈까지 갖구와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거 가지고 황주까지 왔어요.
소리 더 잘해서 출세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20대 은관 // 선생님 댁에서 지낸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일제 말이라 소리로는 어디 설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 갔다가 다시 황주 가서 이인수 선생님 뵙고,
서울 가서는 최경식 선생님께 뵙고. 그러던 어느 해 8월,
황주에서 열리는 추석 부흥회 축제엘 가게 됐습니다.


#2. 1940년대 초반, 황주의 어느 산(축제 현장)

(시골 축제 분위기)
이인수 // 얘 은관아, 내 팔자가 말이다.
나이 마흔 넘어 내가 소리를 많이 할 수 있겠냐?
이은관 // 에잇! 평생 하셔야죠.
이인수 // 아이고~며칠을 산 한복판에서 불렀더니 힘들구나.
은관아, 오늘 ‘배뱅이굿’은 니가 좀 먼저 해라.

(이은관 / 배뱅이 굿)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이 명산에 아들 딸 낳겠다고 명산 대찰 찾아가는데 목욕재계를 고이 하고 세류 같은 가는 허리한 님을
듬뿍 이고서 산천기도를 들어가네. 산천기도를 들어간다.

이은관 육성 // “그때 처음으로 사람 천 명가량 모인 데서 처음이에요. 벌벌 떨면서 내가 나가서 소리를 했어요. 중간에 지금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 삼정승이 재산 많으나, 일점 혈육이 없어. 명산대찰에 불공드려서 손녀 낳겠다고 명산대찰 찾아가렷다. 목욕재계를 고이 하고 세류 같은 가는 허리 한 님을 듬뿍 이고서 산천기도를 들어간다” 하니까 박수가 막 나오잖아. 그러다 한참 있다가. 마지막에 잘라가지고 내가 “왔구나, 배뱅이가 왔어!” 조용히 들어요.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만 혼자 자꾸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는 그만 허고 이번엔 ‘진짜 선생님’이 나와서 하겠습니다” 그러고 내가 절하고 들어왔어요.”

사모님 // (혼내는) 은관아, 넌 생각이 없는 거니?
아님 눈치가 없는 거니? 니가 다 하면 어떡해?
그리고 ‘진짜 선생님’이 뭐냐?
“나에게 <배뱅이굿>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나와서
하시겠다”고 해야지!
이은관 //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선생님.
이인수 // 아니, 이 사람아. 내 제자가 환영받으면 되었지.
그게 무슨 말인가?
사모님 // 잘못한 건 혼내야죠. 그리고 은관아,
옷 좀 깨끗하게 잘 입어라. 바지 뒤 좀 봐. 새까매졌어!
이인수 // 아니, 옷은 빨면 되지. 이 사람아, 그만 좀 허게.

20대 은관 // 항상 감싸주는 선생님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는 스승의 마음을
10년을 배운 후에야 알았지요.


< 신불출을 만나 만담하며, 소리하며 >
#3. 1940년대, 서울-종로4가 제일극장

(차 지나가는 소리)
이은관 // (혼잣말) ‘여기가 제일극장이구나.
드디어 서울서 무대를 서게 됐어.
그것도 신불출 선생과 함께라니!’

신불출 // 만담하고 연극하는 신불출이오.
박천복이가 자넬 추천하던데 ‘배뱅이굿’을 잘한다고?
이은관 // 이인수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신불출 // 내일부터 같이 공연하지. 신불출, 박천복, 손홍란, 김계춘,
그리고 이은관이 자네까지 다섯이 한 팀이야.
자넨 김계춘하고 ‘배뱅이굿’ 같이 하게.

20대 은관 // 김계춘 누님이 소리할 때 내가 장구치고,
또 내가 소리할 때 누님이 장구치고.
<배뱅이굿>은 주고받는 소리예요.
그런데 김계춘 누님이 소리하고 내가 받는데~

(박수 소리)
관객1 // (소리치는) 장구 치는 놈, 한마디 더 해라!
관객들 // (이어서 큰 소리로 외치는) 더 해라! 더 불러라! 잘한다!

20대 은관 // 사실은 제가 한 명한텐 미리 부탁한 거거든요.
그런데 박수가 쏟아지고 관객이 호응을 크게 해줘요.
공연도 이틀 연장되고 처음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신불출 // ‘배뱅이굿’이 요즘 인기가 많아.
다음 공연부터는 이은관 자네 혼자서 하게.

이은관 육성 // “김계춘 선생은 요즘 말로 말하면 이은관은 김계춘 선생은 좀 떨어졌죠. 그런데 그분은 〈배뱅이굿〉 ‘진수’, 아주 슬프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노인들은 좋아하지만 대중을 이은관이가 웃기고 울리거든. 그러니까 내가 흥행적 가치가 있으니까 나를 뽑고 다른 사람은 간 거지.그러니까 그 사람은 나가가지고 혼자 댕기는 걸 많이 또 배뱅이굿에 이런 게 있거든요? “반갑고 반갑구만 고향 산천 반갑구나. 고향 산천초목들도 나를 보고 반기는데” 이런 대목이 있어요.”

신불출 // 이보게. 은관이. 이제 대구, 부산, 원산까지 전국을 다닐 거야. 앞으론 양복 입고 만담도 좀 더 넣어서 하면 어떨까?
이은관 // 배뱅이굿은 원래도 재담 소리지요.
전 장단 없이 웃기는 만담 질도 잘합니다.

(배뱅이 굿)
(이렇게 경치 좋은데 찾아가서 매일 같이 삼부인 삼정승이 아들딸 많이 낳게 해달라고 정성을 들이고 빌고 빌었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부인이 아마 그달부터 뱃속에 뭐 생겼나 보죠?
하루는 삼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꿈 얘기를 해요 꿈 얘기.
제일 먼저 이 정승의 부인께서 한마디 해보죠.
아이구 난 저번 때 꿈을 꾸는데 꿈에 하얀 백발노인이 오더니
머리 달비 한 쌍을 주길래 그 달비를 받아서
그냥 치마폭에다 배배 트는 꿈을 꾸었어요.
그런데 어째 그런지 요즘은 그냥 골머리가 자끈자끈 아프고
고저 먹고 싶은 건 시큼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이은관 육성 // “세월네 네월네야 그러면 저절로 웃는 데가 많습니다. “세월네 네월네야 나는 죽어서 북망산천에 가서도 아직까지 이름을 고치지 않았다만, 너희들은 나 죽은 후에 이름이나 고치지 않았느냐. 얘 내가 이름 왜 고치냐. 난 너 죽은 다음에 세월네 세월네대로 고냥 그대로 있다. 얘!” 가 혼자서 이러면 다 웃어요. 그건 이인수 선생님께 배운 대로 그대로 했습니다. 그 양반 전통이에요.”


< 힘들었던 일제강점기 >
#4. 1940년대, 부산의 한 여관

(여관 문 세게 차는 소리)
일본 경찰 // 신불출, 문 열어! 총독부 사상부에서 나왔다.

(문 차고 부수는 소리)
일본 경찰 // 신불출, 박천복, 이은관, 손홍란! 다 나와.
이은관 // 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일본 경찰 // 그건 너희 대장, 신불출이한테 물어봐. 가자, 경찰서로!

20대 은관 //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말,
쇠쪼가리라면 모조리 걷어갈 때였고
감시와 통제도 심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불출 선생은
일제를 반대하는 내용을 만담에 넣었지요.

(일본왕 패전 방송)

20대 은관 // 해방 후엔 신불출 선생과 일로는 갈라섰습니다.
대한국악원 민요부에 소속돼서 소리 쪽으로 전념했어요.
그때부턴 만담하는 장소팔, 고춘자와 함께했지요.

(장소팔, 고춘자 만담소리)

20대 은관 // 장소팔, 고춘자는 만담을 하고 저는 소리를 하며
농촌 위문 공연을 다녔습니다.

< 고난의 연속 –목소리+가난+한국전쟁 >
#5. 1940년대, 전라북도 익산 도로 트럭 짐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 짐칸 덜컹거리는 소리)
고춘자 // (흔들리는 트럭 짐칸, 투정) 이거 너무한 거 아녜요?
장소팔 // 그러게 말야!
고춘자 // 숙소까지 20리나 되는데!
장소팔 // 게다가 부슬비까지 내리는데!
고춘자 // 우리 보고 트럭 짐칸에 타고 가라니요?
장소팔 // 그러게 말야!
이은관 // (소리허듯 소리 막지르는) 아이고 난 소리나 할란다.
소리를 질러야 목이 열린다네.
(소리 지르는) 아~아~

30대 은관 //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고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이은관 // (목이 쉰) 흠흠... 아.... 아....

30대 은관 // 그 후로 전 1년 동안 소리를 못 했습니다.
더 걱정인 건, 저 따라 서울 온 가족의 끼니였어요.
아버지, 딸 셋, 동생 둘, 저까지 일곱이 쪽방 두 칸에서 지냈고,
고구마라도 먹으면 감사한 하루였지요.
아내는 막내아들을 낳고 난 후유증으로 먼저 갔더랬죠.

이은관 육성 // “딸만 셋 낳았는데 아들은 낳는다고 해방되고 그냥 약도 없고 하니까 그냥 죽고, 여름에도 또 내가 사탕가루를 못 사서 넘어갔으니까 죽고, 그래서 그것을 내가 죄스럽게 생각하고 또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서도 내가 부모님 속을 참 무척 태우지 않았어요? 장가처의 속은 얼마나 탔겠습니까. 말도 못 하고 속만 태운 거요. 그것을 지금도 못 잊어요, 내가. 제일 내 죄다.”


#6.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서울

(한국전쟁 당시 폭격, 총 소리 등)
30대 은관 // 가혹한 시련은 우리 가족을 다시 덮쳤습니다.

둘째딸 // (울먹이며) 아버지, 전쟁 났는데 또 어디로 가세요?
막내딸 // (울면서) 우리 두고 가지 마세요!
이은관 // 고모들이랑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있어라.
아부지 일 끝나면 바로 올게!

30대 은관 //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대한국악원으로 소리 잘하는 몇을 보내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인민군 내무성 협주단’에 차출되어
서울을 떠나게 됐지요.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 이은관 – 배뱅이굿 )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유형문화재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보유자
이은관 선생이 제자인 김경배 선생과 함께하는
배뱅이굿의 한 장면을 듣고 계십니다.
제자이자 서도소리 보유자인 김경배 명창으로부터
‘배뱅이굿’의 전승 역사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김경배 // 논문 쓴 학자들 이야기 들어보면 거의 450년 전부터 이게 내려왔다는 설도 있고, 이게 어우야담이라는 설화에, 동윤설화에 거기에 다 그런 게 있어요. 배뱅이, 상좌중. 그리고 또 조금 더 올라가서는 단군이야기에도 그게 나와요. 중하고 사랑을 나눠서 애를 낳았다. 이런 이야기가 단군이야기에 있잖아요. 거기서도 조금 나오고 여러 가지 나와요.
그래서 판소리처럼 부르기 시작한 건 우리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신 김관준 선생님이라고 19세기 초에 스님이었는데 그분이 글을 잘 썼어요. 글을 잘 써서 아마 그분을 통해서 내려왔다는 것도 있고. 그래서 김관준이 아들이 배뱅이굿을 배운 거야. 그래서 김관준 아들 김종조, 이인수 친구인데. 이인수 선생님이 우리 이은관 스승이에요.

나레이션 // <배뱅이굿>은 크게 황해도 계열과 평안도 계열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황해도 계열의 명창으로는 문창규와 김계춘이 있었고
문창규의 <배뱅이굿>을 양소운이 이어받았습니다.
평안도 계열의 <배뱅이굿>은 김관준에 의해
1920년대 전후 서도 일대로 퍼져 나갔는데,
김종조, 김주호, 이인수에 의해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은관 선생은 이인수 선생에게 <배뱅이굿>,
<공명가>, <초한가>를 비롯한 서도소리 전반을 사사했습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서도소리 – 배뱅이굿, 이은관, 두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연, 연출 권윤혜,
출연 구자형, 이서윤, 이기호, 전해리, 한만중,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감독 조성도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타고난 재능만이 아닌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일평생을 소리에 쏟아부어 서도소리 보유자와 배뱅이 굿의 대가가 된 이은관의 생애를 다룬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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