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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장 ‘유영기’ 편 (3) - 우리나라 최초의 화살 박물관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736
유영기 육성 // “내 생애에 잘 되고 못 되고 간에 궁시박물관 하나 지어놓은 거, 그게 내 하나의 냄겨 놓은 뿌리가 아니냐. 궁시박물관은 전례도 없었으니까.”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궁시장, ‘유 영 기’.
제3화, “우리나라 최초의 화살 박물관”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목숨을 건 화살 일 2 >
#1. 1979년, 파주 집, 공방

60대 영기 // 오늘은 1979년 겨울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부터 해보지요.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전국대회에서 쓸 화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화살 만드는 소리)
아내 // 이거 삼척에서 주문 들어온 거죠?
유영기 // 강원도에서 난다 긴다 허는 활량들이라 잘 맨들어줘야 해.
아내 // (투덜거리는) 근데 이렇게 급하게 주문하면서
그램까지 맞춰달라니, 너무한 거 아녜요?
유영기 // 활량들 마음, 이해도 되네.
뭐 등수라도 하나 들어가야겠다 싶으니
화살 욕심이 더 나는 게지.
아내 // 그래도 그 사람에 딱 맞게, 딱 똑같이 만들기가 어디 쉽나요?
유영기 // 하.. 그러게. 기계도 아닌데...
아내 // 당신 손이 기계인 셈이죠.
유영기 //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허허. 어! 숯을 좀 더 넣어야겠어.

60대 영기 // 다른 궁시장들은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전 아내하고 둘이 화살을 맨들었지요.
주문제로 하다 보니 급하게 연락이 오면 밤도 자주 샜어요.
그런 날엔 아내와 이야길 많이 나눴죠.

(화살 만드는 소리)
유영기 // 요즘 부쩍 돌아가신 아부지 생각, 형님 생각이 많이 나네.
아내 // 난 아주버님 얼굴도 못 봬서 당신 얘기로만 듣네요.
유영기 // 우리 애들 넷에 조카 둘까지, 그리고 화살 일까지 허게 하고
고맙고 미안허이. (하품) 하~
아내 // (투정) 고맙다고 하면서 하품을 왜 자꾸 해요~
유영기 // 그러게 말야. (하품) 하~ 오늘 좀 이상허네.
아내 // 나두 하품이 나오네요. 하~ (하품하는)

(새벽 3시를 울리는 시계 소리)
어머니 //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여적까지 일하나?
(조용히 부르며) 얘, 영기야, 애미야!

(문 여는 소리)
어머니 // (놀라서 울부짖는) 영기야! 얘, 상현 에미야!
(뺨을 치며 다급하게) 영기야! 영기야! 일어나봐.
유영기 // (신음) 어어어
어머니 // 얘, 에미야! 너두 눈 좀 떠봐.
유영기 // (신음) 어어어
상현 // (놀라서 뛰어오며)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엄마, 아버지가 왜 이래요?
어머니 // 숯불 때문에 가스 중독이 된 거 같다.
상현아, 부엌에 가서 동치미 국물 좀 떠서 빨리 좀 가져와라.
상현 // (걱정스러운) 네, 할머니.
어머니 // 영기야, 에미야, 정신 좀 차려봐라.

60대 영기 // 그때 어머니가 절 애타게 부르던 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절 낳아주고 살려주기까지 허셨으니 세상 가장 고마운 분이구,
또 아부지는 저한테 화살 일을 가르쳐주셨으니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한 분이지요.
두 분을 떠올리면 왠지 가슴이 아파옵니다.

유영기 육성 // “내가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왜 내가 아버지한테 그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나 하는 게 지금 갈수록 생각해요, 더. 그때 고기도 사다 드리고 술도 좀 사다 드리고, 옷 장사하니까 옷도 좀 갖다 드리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으냐 그거야. 내가 그걸 왜 못 했냐 하는 거야, 도대체가. 전에 금촌에서 농사 질 적에 논두랑 있잖아요, 논두랑. 거기 앉아서 벼를 뒤집어요. 뒤집다 말고 논두랑에서 쉬셔, 그래 나도 거기 앉아서. 나한테는 할아버지였죠, 그 옛날 돌아가셨을 때 생각나십니까? 그랬더니 “아유, 이 사람아, 말도 말게.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생각이 더 나네.” 근데 그게 원칙이야.”


< 화살 일의 명과 암 >

60대 영기 // 그래도 다행인 건 어머니 생전에 화살로 상 많이 탔습니다.
1996년에는 궁시장 보유자로 지정도 됐지요.
생전에 어머니가 허신 말씀이 있습니다.

70세 어머니 // 영기야, 나두 니 아부지 때문에 힘들어 죽을 뻔했다.
화살 일 허다 만 거 마무리에다, 심부름도 엄청 했지.
그러니 니가 받은 상 그거, 인간문화재,
상현 에미도 돼야 되는 거 아니냐.

60대 영기 // 어머닌 화살 일 허는 제 걱정도 많이 하셨지요.
좋은 대나무를 구하러 충청도부터 멀리 제주까지
전국을 헤매고 다니면서 위험한 일이 많았거든요.
어느 해인가, 최전방 해안지대인 충남 서산, 태안에서의 일입니다.


#2. 충남 서산 태안

(바닷가 근처 대나무숲 파도 치는 소리)
군인1 // 꼼짝 마! 두 손 위로!
유영기 // (겁 먹은) 네네. 제 손에 암껏도 없습니다.

(총 들며-장전 소리)
군인2 // (다가오며)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유영기 // 두려워하는) 네네. 주민등록증 여깄구요, 제 명함입니다.
화살 맨드는 사람입니다. 전통공예 허고 있어요.
군인2 // 신원 확인 좀 하고 오겠습니다.

(파도 소리)

60대 영기 // 군인들이 정찰 돌다가 대나무 베는 소리가 나니까 온 거지요.
간첩으로 의심하구 총부터 겨눴던 겁니다.

유영기 육성 // “어떤 때는 그 벼랑이 이렇게 있잖아요. 여기서는 파도가 치는 거예요. 여기서 들어가서 착 쓿고 탁탁 하고, 그 낭떠러지에 보니까 [대나무가] 좀 더러 몇 개가 보이거든요? 그때는 내려가요, 거기. 내려가서 자릅니다. 거기서 발만 잘못 헛디뎌가지고 굴르면 굴러떨어지는 거야, 허지만 그 또 욕심에, 욕심에 그걸 잘라가지고 올라오고. 인제 그런 예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 파주에서 서울로- 시련의 시기 >
#3. 1980년대, 서울 신당동 집

(전화벨 소리)
유영기 // 여보세요!
네. 제가 상현이 애비됩니다만...

60대 영기 // 나이 마흔아홉에 파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지요.
큰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싶었습니다.
자식 4형제를 번듯하고 반듯하게 키우고 싶었지요.
그런데 하늘만 아는 일이 있더라구요.

유영기 // (떨리는 목소리로) 뭐라구요? 감전사요?
(울먹이며) 저희 애 상현이 맞습니까?

유영기 육성 // “비 오는 날, 전주(電柱)일 허는 놈이 어딨어요, 그만둬버리지. 그래서 국립묘지 거기 저 현충원 있잖아요. 거기 안장도 했고 사진도 갖다 해놨다가.. 얘가 막내인데 근데 백혈병으로 갔죠. 그래서 4형제 중에서 형제 남았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팔자 좋은 사람이라, 나는 돈이 많다 하고 있는 거보담도 눈에 상시럽지 보지 않는 것이 팔자가 좋은 사람이다 그거야.”


< 대를 이을 둘째 세현의 결심 >
#4. 1980년대, 서울 신당동 집

60대 영기 // 군대 있던 큰아들의 순직으로
둘째 세현이는 군 복무를 1년만 하고 제대를 했지요.
치기공과 졸업 후엔 바로 취직도 됐어요.
근데 얼마 안 가 그만두곤 폭탄선언을 합디다.

유세현 // 아버지, 저 드릴 말씀 있어요. 저 며칠 전에 직장 그만뒀어요.
유영기 // 뭐라고?
유세현 // 나 아버지 하는 거 할래요. 화살 일 할래요.
유영기 // 안 된다! 이거 가지곤 밥 못 먹어.
차라리 크게 포부를 잡고 다른 사업을 한번 해봐라.
유세현 // 아니요, 다른 사업은 안 할래요.
제가 할 일은 아버지가 평생 해온 화살 일입니다.
유영기 // 니가 지금 고집을 피운다면 방법은 없다만...
유세현 // 저도 가문의 업을 잇는 긍지를 느끼고 싶어요.
유영기 // 그치만 화살 잡으면 밥 먹기 어려워.
애들 키우기도 그렇고 여러 문제가 크다.
그것만큼은 니가 각오하고 할래면 해라.
유세현 // 네, 저, 화살 일, 하겠습니다.


유영기 육성 // “그때부텀, 그전에도 많이 배웠죠. 살집이 있으니까 밤낮 눈으로 보고 또 쉬운 거는 ‘내가 이거 좀 해라.’ 그러고, 기가 막혔잖아요. 평생 봐왔으니까. 칼질은 어떻게 하며 어? 졸은 어떻게 보고 대잡이는 어떻게 하는 걸 밤낮 보고.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걘 재주 있어요. 재주가 좀 나보다도 훨씬 나아요. 야, 그래서 너도 이거 팔자구나.”


< 전통무기 복원의 시작과 성공>
#5. 1990년대, 서울 집

유세현 // 아버지, 저는 화살 말고도 우리 전통무기 관련해서
다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화살 복원은 물론이구,
유영기 // 아니 우리겉이 화살 맨드는 사람들은
유엽전 하나만 매달렸는데.
뭐냐, 조선시대 때 무과 시험에 쓰이던 화살 말이다.
유세현 // 저도 알지요. 전 유엽전 말고도 우리 전통무기에 대해서
다 알아보고 싶어요.
유영기 // 포부가 크구나. 애비가 인맥 총동원해서 힘껏 도와주마.
육군사관학교 교수들도 만나보구, 문화재 위원들도 만나고,
여러 교수들한테도 연락해봐야겠다. 다들 도와주실 게다.
너랑 나랑 공부 다 한 뒤엔 ‘우리나라 궁도’ 책도 함께 써보자.
유세현 // 좋지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국궁무예대축제 중 (1998) 군악대 부분)

60대 영기 // 세현이와 제가 같이 뜻을 모은 건
무엇보다 전통무기 복원이었지요.
이건 육군사관학교와의 합동연구로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1998년엔 건군 50주년 행사에서
전통무기 발사 시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전’이라고, 420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 2단 로켓이 있어요.
그 신기전 복원과 발사에도 참여했습니다.

(행주대첩 420주년 기념 신기전 발사 시연회)

유영기 육성 // “활 쏘는 거, 편년 쏘는 거. 또 그 뭐 저 화전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래서 그걸 다시 또 재현을 하고 그러니까 마음이 흐뭇하고 좋은 거 있죠. 그때 당시가 아 내가 제일 화려하지 않았느냐.”


< 궁시장 보유자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화살박물관 >
#6. 1999년, 카페 또는 사무실

유세현 // 교수님, 복원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육사 교수 // 저야말로 유 선생님이랑 세현 씨 덕분에 전통무기에 대해 많은 걸 배웠는걸요.
유영기 // 이 교수, 나 궁시박물관을 하나 지을라 그러는데
그 이름을 뭘로 해야 될 지 모르겠네요.
육사 교수 // 선생님 호가 영집이니 영집궁시박물관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유영기 // 영집궁시박물관- 느낌 좋습니다.

유영기 육성 // “얘들 아주 뿌리 있게 하라, 뭘 하라, 심어줘도 심어줘야 되는데, 내 그거 내 일과죠.”

나레이션 // 가볍게 날되 큰 꿈을 품은 화살과 같았던 영집 유영기의 삶.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그의 손길은 화살에 있습니다.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나레이션 //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영집궁시박물관’.
유영기 궁시장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화살박물관입니다.
전승교육사이자 둘째 아들인 유세현 관장이
박물관을 운영하며 우리나라 궁시 문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뜻을 함께해온 유세현 관장으로부터
박물관의 설립 배경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유세현 // 우리가 활쏘기를 굉장히 잘한다, 엄청나게 뛰어나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딱 외국인이 왔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우리 활 문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와서 우리 활 문화가 이렇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데가 사실은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군사박물관들에는 항상 돼 있는데 거기는 군 안이잖아요. 그러니까 보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지 가서 볼 수 있는 데가 아닌 거죠.
그런데다가 그건 계속 변해가고 있는 거죠. 화살은 계속해서 전통 죽시라고 하는데 전통 죽시도 굉장히 많이 바뀐 거예요. 화살촉 부분도 바뀌고 재료도 바뀌고 지금 기본적인 재료가 남아있어서 저것이 전통 죽시라고 하지, 전통 죽시를 그대로다가, 그 모양 그대로다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아닌 거거든요. 그런데 그래도 그건 전통 죽시라고 치고 있고.
그다음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머지들은 아까 신소재로 만들어진 이런 여러 가지 화살들이 공장에서 나오기 시작하니까 그런 것 가지고 활터에 가서 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나마 좀 변모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죽시 자체가 사용이 되는 게 일부분이긴 하지만 굉장히 중요해진 거죠.

나레이션 // 영집궁시박물관에는 국내외 다양한 화살이 전시돼 있습니다.
주로 학생 단체나 외국인이 찾는데
전통화살 제작과 활쏘기 체험도 가능합니다.

유세현 // 다양한 활쏘기를 반영할 수 있는 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 활쏘기가 한가지로 되어 있는데, 여기를 통해 효시, 편전, 박두, 철전 이런 여러 가지 활쏘기들이.. 물론 제가 그걸 만들어서 그분들에게 공급을 하는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박물관의 프로그램을 통한다거나 박물관 전시를 통한다거나 이런 쪽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많은 활쏘기, 다양한 활쏘기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다른 쪽에서, 그러니까 만약에 우리가 박물관에서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하면 이걸 뭐 하다못해 게임에서라도, 아니면 영화에서라도. <최종병기 활> 같은 경우에는 우리 편전 굉장히 잘 뽑아서, 그다음에 굉장히 잘 홍보를 하고 그런 덕분으로 굉장히 잘 성공을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직 안 알려져 있는 우리 활쏘기 문화가 많다는 거죠. 이런 거를 대중에게 알리고 연구할 수 있으면 연구하고, 그다음에 이런 과정을 하는 그런 박물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꿈이기는 합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궁시장, 유영기 세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설영범, 이소영, 전해리, 오민혁, 이민규, 이상준,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감독 조눙수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타고난 재능만이 아닌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일평생을 소리에 쏟아부은 서도소리 보유자와 배뱅이 굿의 대가 이은관의 생애를 다룬 오디오 다큐드라마.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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