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오색 빛깔의 『인문학 극장』
『인문학 극장』 공연 일정
#1 양진성 임실 필봉농악 이야기
2019. 11. 7.(목)
#2 김녕만 사진,시간을 품다
2019. 11. 14.(목)
#3 전고필 소쇄원의 풍류
2019. 11. 21.(목)
#4 이성재 굿과 사람
2019. 11. 28.(목)
#5 이기철 정천모의 시낭송 콘서트
2019. 12. 12.(목)
깊어 가는 가을, 인문학의 그윽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 한바탕 펼쳐진다. 예인 (藝人)들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문적 삶이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의 기획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이 땅에서 ‘인문적 삶’은 처량한데, ‘인문학’을 붙여 파는 상품과 강좌는 ‘풍요’요 홍수
다. 그 넘쳐나는 인문학의 상품과 강좌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또한 범람한다.
역설적으로 처량한 ‘인문적 삶’이 빚은 현상이리라. 이 땅에서 ‘인문적 삶’이 충만하다
면 그런 상품과 강좌에 허기지지 않을 터이고, 그런 상품과 강좌에서 허기를 채워도 인
문학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은 아이러니. 이런 즈음에 ‘인문학’을 붙인 또 하나의 프로
그램을 마련하려니, 겸연쩍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얹은 손이 다르다면, 넘쳐나는 여
느 인문학의 상품이나 강좌와는 격이 다르지 않을까. 그 손의 주인공이 현실적 삶은 고
달팠으나 인문적 삶은 충만했던 예인들의 사무침과 자신의 사무침을 여러 무대와 지
면(『노름마치』<문학동네>)에 올려 그들의 인문적 삶을 관객과 독자의 가슴에 탁본했
던 진옥섭(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경박한 ‘인문학 거품’이 아니
라 만추에 맡는 진한 ‘인문의 향기’이리라. 이번 프로그램이 11월 7일 막을 올려 매주 목
요일(12월 5일 제외)마다 12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인문학 극장』(민속극장 풍류)이다.
공연문의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예술실 공연기획팀(02-3011-1721)
#1
양진성이 손끝과 붓끝으로 단련해 혀끝으로 전할 필봉농악에 스민 인문적인 삶
어느 놀이든 인간의 놀이에는 풍악을 울려야 신명이 나고, 그 풍악이 개막에 울릴 때 제 멋이 난다.
우리 민족에게 풍악의 상징은 농악.(이 인문학 극장의 이 섬세한 기획이라니!)
양진성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임실필봉농악 보유자가 풍악이자 농악으로 『인문학 극장』 첫 문
을 떠들썩하게 연다. 전북 방언 특유의 오롯한 리듬 위에 오롯한 어휘를 더해 임실 필봉 농악에 스
며들어 있는 ‘충만한 인문의 삶’을 들려준다.
여느 예능 보유자와 달리 양진성 보유자의 혀끝은 붓끝으로 수련되고 단련됐다. 우리 대부분의
예·기능 보유자들은 ‘손끝’으로 이룬 예·기능이지만, 양진성 보유자는 ‘손끝’으로 예능의 정점을 찍
었고, 붓끝으로 그 정점의 토대를 다졌다. 양진성 보유자는 우석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
학원 국악과에서 석사를 마친 뒤 전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원광디지털대학
교 전통공연예술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필봉농악을 중심으로 한 풍물굿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인문학 극장』 첫 편은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하며 붓끝을 닮았다는 임실
필봉리 마을 이야기와 그 마을 농악의 에토스가 기대된다.
#2
사진작가 김녕만의 사람을 품은 앵글, 시간을 담은 사진
그의 앵글에 잡힌 대상은 늘 그를 닮았다. 그의 앵글은 그의 내면을 잡는 X레이 같다. 그의 서울생
활은 한 세대를 훌쩍 넘겼는데도, 여전히 변함없는 고향 남도 언저리 어느 촌부의 모습이다. 남도
특유의 토속적인 정서를 내면에 스캔해 두고, 부박하고 비참한 현실이나 표피를 잡아내는 ‘탁한
리얼리즘’ 사진이 아니라 구차한 삶 속에서도 존엄성과 행복을 지닌 서민들의 표정이나 삶을 해
학적 시각으로 담아 온 ‘밝은 리얼리즘’ 사진을 쫓아왔다. 하여 그의 사진집에는 모내기를 하다가
나온 허름한 차림의 엄마가 누나 등에 업힌 아이에게 선 채로 젖을 먹이는 모습, 한겨울 거리의 노
점에서 일하는 엄마가 거칠고 굵은 마디의 손으로 찬바람을 맞고 선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
싸는 장면 등이 자주 나온다. 그는 이처럼 늘 ‘인문’이 향한 휴머니즘에 앵글을 ‘고정’하고, 사람을
품고 시간을 담아 온 작가였다. 23년에 걸친 동아일보 사진기자 생활의 사진 역시 ‘밝은 리얼리즘’
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거리 시위들, 국가권력의 심장부 청와대
사람들, 판문점에서 벌어지는 분단국의 비극 등 역사적인 순간을 잡으면서도 휴머니즘의 결을 벗
어나지 않았다. 그의 사진집에서 1980년대 거리 시위가 잠잠해진 틈에 등을 맞대고 쉬고 있는 두
전경의 모습이나, 남북한의 장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다. 눈 깜짝할 새도 놓
칠 수 없는 초긴장의 순간도, 역사의 장면이 될 기록의 시간도, 한편으로는 기억이고 한편으로는
추억인 1970년대 풍경도 휴머니즘, 인문의 빛과 줄 위에 올려놓은 김녕만의 시간이야기, 사진이
야기, 사람이야기는 만추의 색을 더욱 진하게 입힐 것이다.
#3
‘책쾌’ 전고필의 담양 소쇄원 풍류 이야기
올여름 이 풍류객이 담양에 향토사 전문 책방을 준비한다며 페이스북으로 알리고 책방 이름
몇을 올렸기에 ‘모던한 이름’으로 하시라고 필자의 생각을 내 주었더니, 살짝 웃어 주고는 ‘이목
구심서’로 정하더라. 어찌 ‘모던’이 풍류와 처사와 궁합이 맞겠는가?
전고필은 여행자이면서 여행작가이면서 여행기획자이기도 하지만 맨 앞에 놓일 ‘직분’은 책쾌
다. 광주 북구문화의집, 광주문화재단, 서울시 청년 허브, 광주 대인예술시장 등에서 기획자나
실행자로 일할 때도 책쾌의 숨과 땀을 그 기획에 녹여 넣었었다. 그러던 그가 이내 전남 담양군
담양읍 국수거리에 헌책방 ‘이목구심서’를 차려 놓고, 지역 사랑방 역할이 아니라 그 지역의 공
동체를 재구성할 ‘인문의 진지’로 삼고 있다. 그는 이 진지에서 문화기획자를 양성하고, 여전히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여행작가를 겸하며 살아갈 터다. 이 동네 저 마을의 이런 인문학 강좌
저런 인문학 프로그램에 불려 다니는 이들이 대개는 서울이거나 꽤 큰 도시에서 사는 강연자
들인데, 시골 골짜기 헌책방 주인이 서울에 불려 나와 『인문학 극장』에 서는 것도 가을 바람결
처럼 신선하고 선선할 듯싶다. 전고필은 책쾌이면서, 벼슬 한번 해 보지 않고 벼슬의 무거움과
무상함을 깨달아 버린 양산보를 쫓아왔고, 양산보가 산수 간에 은거를 택하고 세상 잡사에 물
들지 않고자 지었던 소쇄원에 은둔하며 젊음을 보낸 ‘소쇄원 처사’이기도 하다. 전고필이 들려
주는 느릿하게 쉬어가는, 소쇄원 이야기.
#4
이성재 굿과 사람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무속신앙에 근거하고, 한국인을 영적인 민족, 이른바 ‘신의 민족’이라고
도 믿으면서, 굿의 원형 찾기와 복원에 노력을 기울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이성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보존회장. 하여 나름 굿에 대해 깊은 인식 체계를 갖고, 아
직도 작두에 오르며 그 인식 체계를 ‘신령’으로 보여주는 박수무당. 열네 살 봄날, 옆동네에서 상
여 나가는 것을 보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박수의 길을 걷게 된 그가 들려주는 서울지
방의 망자천도(亡者薦度) 굿,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굿인 서울새남굿 이야기. “우리나라 굿의 자존
심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서울새남굿은 한민족의 상상계를 그 속에 온전히 보존하고 있습니
다. 이 때문에 우리 무속의례의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의례이지요.”
망자천도(亡者遷度), 서방극락세계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긴 데서 알 수 있듯이 불
교의 저승관과 유교의 망자의례 요소를 잘 수용하고, 편성되어 있음을 굿 하듯 ‘인문적’으로 펼쳐
보일 무대. 이 무대에서는 국가적인 예술성이 짙으며 정교하고도 치밀한 구성으로 웅장하고도 매
우 화려하고, 해학적이며 연극적 요소 등 전통문화의 여러 형태와 내용이 풍부히 담겨 있는 이 굿을
경쾌한 장단 가락으로 보여 줄지도 모르는 차례.
#5
이기철·정천모의 시낭송 콘서트
인문학 극장 마지막 무대는 가장 우아한 무대, 시낭송 콘서트다. 모든 예술(과 인문학)이
우아하지만 그중 으뜸으로 우아한 예술이 ‘시’라고 생각한다. 시는 언어예술이면서, 음악
(성) 예술이고, (시행은) 시각예술이어서다. 이 무대는 “숨은 차지만 시인이 걸은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기철 시인과 이 시인의 시를 늘 낭송해 온 정천
모 시 낭송가가 함께한다. 이기철의 시는 “고향에서 강제로 박리된 현대인의 근원적 상실
체험을 노래한다”라고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소지식인의 자의식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이기철의 시적 자아를 지배하는 것은 정당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권력의 행태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굴종할 수밖에 없
는 소시민적 지식인의 자의식이다.” 이게 없으면 ‘인문적 삶’이 아니다.
“지난겨울 내리자 녹던 싸락눈아 얼마나 슬프냐 티눈아 먼지야 너는 얼마나 슬프냐” 「슬픔에대하여」
“움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생(生)의노래」
여느 시인의 시보다 이기철 시인의 시를 낭송해 온 우보 정천모의 시 낭송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연이고, 예술이고,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