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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풍류방의 언어 풍경 Ⅵ
판소리 성음 이야기
판소리는 풍류를 즐기는 중인 계층의 예인들 외에도 상류사회 집단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 시인 신자하(申紫霞)가 판소리 명창 고수관(高 壽寬)을 데리고 유람하거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박유전( 朴裕全)을 따라 전남 보성을 방문하는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판소리의 향유층이 매우 폭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식계층이 관련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됐고, 판소리를 비평적으로 감상하는 감상자들의 탄생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판소리에는 판소리의 음악과 관련돼 여러 말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중 판소리의 ‘성음’과 관련된 말들은 창사의 소리와 관련돼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어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 전문 비평을 위한 기본기 ‘성음 용어’ 필자는 몇 년 전 판소리 성음을 주제로 한 제자의 논문을 지도한 적 이 있었다.① 그 결과 성음을 설명하는 용어들이 소리와 관련하여 음 질·발성·목기교 등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음질은 음 색·음고·음량·세기와, 발성은 발성 방식과 결과 등으로 그 내용을 더 구분해 볼 수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성음 용어는 일반적 으로 음질·발성·목기교의 단일한 요소로 구성되기보다는 복합적 요소로 혼합돼 제시된 것임을 알 수 있다.② 따라서 성음 용어들을 잘 이해한다면 판소리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평의 시작은 소리의 좋은 것과 나쁜 것 을 가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소리꾼의 판소리도 분명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가 있을 것이다. 좋은 성음과 나쁜 성음 그리고 양성 성음을 일컫는 말 예로부터 좋은 성음으로 일컬어지는 것으로 천구성·수리성·통성 등이 있었다. 천구성은 “튀어나오는 소리, 즉 천연적인 명창의 성음”
“타고난 목소리로 누구나 듣기 좋아하는 목소리” “탁한 음색 가운데 맑은 소리가 힘있게 뻗어 나오는 소리”라고 했다. 수리성에 대해서는 정노식(鄭魯湜)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서 명창 이날치의 소리를 빗대어 “그 수리성인 성량이 거대해 춘향 가를 할 때에 나팔을 방창하면 완연히 실물로 불어내는 소리를 내이 고”라고 했으니 거대한 성량을 내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 나, 보편적으로 “탁하고 근성 있는 목소리” “여러 구성이 있는 성음 으로 못생겨도 귀여운 사람처럼 귀여운 맛이 있는 애원성, 쉰 듯하 면서도 지르면 올라가고 은근하게 나오는 목” “귀성이 있고 걸걸한 좋은 목성음” 등이라 하여 걸걸하나 여러 목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듣기 좋은 성음으로 본다. 통성은 발성 방식에서의 좋은 성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호 흡을 배(단전)로 하여 단전의 힘으로 소리를 밀어내는 것”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는 소리” “단전에서 중후하게 지르는 소리” “꾀를 부리 지 않고 배에서부터 뿜어내는 힘찬 소리”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 리, 아랫배에서부터 힘을 주어 힘차게 질러내는 소리”라 볼 수 있다. 사실 좋은 성음보다는 나쁜 성음을 표현하는 것이 많은데, 이는 잘 못된 성음을 지적해 좋은 성음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예술 비판적 태도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나쁜 성음으로 겉목·고자목· 굳은목·꾀목·떡목·마른목·생목 등을 들 수 있다. 겉목은 “피상적으 로 싱겁게 쓰는 목소리”를 말하며, 고자목은 “목구성 없이 땍땍 나오 는 목으로 소리하기 좋지 않은 목”이라 한다. 굳은목은 “소리가 굴곡 이 없이 아주 뻣뻣하게 멋이 없이 나오는 목소리”를 말하며, 꾀목은 짐작하듯이 “힘을 써서 발성하지 않고 꾀를 부려 힘없이 하는 소리” 라고 하니 소리를 대하는 신중한 태도를 매우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떡목은 “본디 목이 좋지도 않고 또 공부도 하지 않은 소리” 또 는 “텁텁하고 얼붙어서 별 조화를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말하며, 마 른목은 “아주 깔깔하기 말라 버린 목소리”, 생목은 “소리에 공력이 없어 많이 쓰이지 않는 성음” 또는 “목이 트이지 않은 성음” 등을 말 한다고 한다. 어떤 성음은 좋은 성음이라는 의미와 나쁜 성음이라는 의미로 서로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양성의 경우 “극히 미려 하거니와 각양각색의 목청을 갖춘 것” “상청이 잘 나고 깨끗하고 호 짓게 나오는 목소리” “높이 지를 수 있는 목” 등으로 좋게 보는 견해 와 “목구성이 없는 성음” “되바라진 소리” 등으로 나쁘게 보는 견해 모두 존재한다.
소리의 성질과 묘사, 특출한 성음을 딴 명창 이름까지 소리가 높고, 낮은 것 등 그 성질이 부각되는 성음도 존재한다. 고등 세목은 “최상성, 가장 높은 청, 상성 위의 한층 더 높은 청”을 말하고, 된목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언제나 상성으로만 쓰는 목”을 일컬 으며, 눅은목은 “상성은 없고, 언제나 하탁성으로만 내는 목소리”를 가리킨다. 둔병목은 “소리하다 높은 데서 푹 떨어지는 목”으로 소리 가 안 풀어져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이를 통해 소리가 높기만 해도, 낮기만 해도 좋은 성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하는 목을 어떻게 쓰는가를 가지고 나온 성음도 보인다. 각구목 질은 “소리할 때 여러 목이 여러 가지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긴 목은 “자유로이 숨결을 길게 할 수 있는 목”, 깍는목은 “소리를 하다 가 모가 있게 깎아 내는 목”, 속목은 “목 안에서 내며 불분명하게 목 밖으로 발하지 않는 목”이다. 짜는목은 “평범하게 소리하다가 소리 를 쥐어짜서 맛있게 하는 목”을 말하며, 조으는목은 “목소리를 맺어 떼려고 바싹 조아들면서 내는 목”을 가리킨다. 판소리는 소리에 대한 묘사뿐만이 아니라 상상 속 존재에 대한 묘 사 또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귀신의 울음소리인 귀곡성을 내는 성음 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기도 했다. 귀곡성에 대해 정노식이 『조선창 극사』에서 송흥록을 설명하며 “그는 비곡(悲曲)을 잘하였고, 귀곡성 (鬼哭聲)에는 탈조화(奪造化)하였다”라고 했듯이, “귀신의 울음소리 같이 사람으로 흉내낼 수 없는 신비의 소리”라는 귀곡성을 잘 구사 할 수 있다면 분명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이라 할 것이다. 어떤 명창은 어떤 특출한 성음이 좋아 그의 이름을 성음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전라도 광주 출생 임승근 명창은 “쑥대 머리” 음반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는데, 임승근이 방울목을 즐겨 잘 썼기에 임방울로 불렸다. 방울목이란 “둥그렇게 떠내는 목” “영 글고 둥글게 잘 치는 목” “예쁘게 잘 돌려서 다루치는 것” “궁글궁글 구을려 내는 목소리” 등으로 설명되는데, 판소리의 사설 한 음절을 여러 개의 음정으로 동그랗게 감아내는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처럼 판소리의 성음 용어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판소리의 여 러 면들을 잘 드러내어 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음 용어는 판소리 창자들 사이에서나 학자들의 토론의 장에서만 사용될 뿐 대중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우리 소리 말들을 빨리 꺼 내어 모든 소리를 설명하는 말로 키워봄도 좋지 않을까.
기산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중 ‘가객 소리하고’.
판소리는 풍류를 즐기는 중인 계층의 예인들 이외에도
상류사회 집단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미지 제공: 필자
2.
김홍도의 <평양감사부임도>.
판소리꾼 모흥갑의 판소리 장면.
소장처: 서울대학교박물관, 이미지 제공: 필자
① 박세현, “판소리 성음 분류 및 해석에 대한 재검토”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학위 논문, 2014).
② 성음 용어를 언급하고, 검토한 자료들을 보면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1940), 박한봉의 『창악대강』(1966), 이보형의 『판소리 유파』(1992) 등의
단행본을 비롯해 국립민속국악원의 『판소리 성음의 세계』에 수록된
다수의 논문이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장노식, 박헌봉, 이보형, 최동현,
서종문, 이규호, 김혜정, 노재명 등 연구자들의 결과를 정리 인용했다.
- 글.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