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인류 가면 문화의 주술성·상징성·예술성
가면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풍요제의가면, 벽사가면, 신성가면, 의술 가면, 추억가면, 영혼가면, 전쟁가면, 장례가면, 입사가면, 토템가면, 기 우가면, 수렵가면, 예술가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전통사회에서 가 면은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면은 만드는 재료, 가면에 새겨진 문양의 상징, 가면의 용도, 가면의 기능 등에 있어 나라 별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세계의 가면들을 통 해서 각국 가면들의 사회적·상징적 의미, 예술작품으로서의 독창적 표 현, 인류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인류는 신석기시대 이래 농경과 목축사회로 들어오면서 삼라만상 속에 영혼과 정령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영혼과 정령을 다시 선령 (善靈)과 악령(惡靈)으로 구별해, 모든 현상과 인간의 행·불행은 이 악 령과 선령의 싸움과 교체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악령을 이겨 물리치고 선령을 맞아 위무하기 위해 주술의 힘을 빌렸는데, 이 주술의 하나로 가면이 요구되었다. 더욱이 알제리의 타실리나 프랑스 남부의 라 스코 등 선사시대의 동굴벽화 및 한국의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수렵이 나 무용과 관련된 가면을 쓴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사냥과 풍작을 관장하는 신에게 바치는 샤머니즘 의식과 관련이 있다. 그들의 생존을 위한 실용적 기술인 주술에서 가면은 필수적인 존재였던 것이다.001) 문화의 발전과 함께 주술로 해결하던 단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예술가면이 생겨났다. 주 술의 해결 기능이 창조적 표현 기능으로 변화되면서 가면도 주술가면에서 예술가면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처용무는 주술적 춤으로부터 예술적 무용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신라시대 이래 고려·조 선시대까지 처용 가면을 쓰고 춤을 추어 역귀(질병 귀신)를 쫓아내는 처용 무가 전승되어 왔다. 처용은 머리에 모란꽃과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고 있 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고, 복숭아나무 가지는 귀신을 쫓는 벽사 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성현의 『악학궤범』에 소개된 〈학·연화대·처용무 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조에서 드러나듯이, 처음에는 주술적 성격을 띠었던 처용무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나례에서 역귀를 쫓아내는 의미와 함께 무용예술로서의 성격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처용무는 섣달 그믐날의 나례 때 이외에 각종 궁중 잔치, 국가와 지방 정부의 각종 행 사, 사대부가의 잔치 등에서 자주 연행되었다. 현재는 전통무용으로 전승 되고 있기 때문에 예술적 가면무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01_주술성과 상징성을 보여 주는 처용 가면
02_부탄 참 <드라메체에서 온 북춤>에서 지휘자 격인 백사자 가면이 다른 동물 가면들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
03_네팔의 <마하깔리 퍄칸>에서 마하깔리, 쿠마리, 마하락슈미 등
세 여신이 수행원들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
"문화의 발전과 함께 주술로 해결하던 단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예술가면이 생겨났다."
001_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12면.
아시아의 예술적 가면무와 가면극
세계 각국에는 비전문적 연희자인 농민의 가면극, 전문적 연희자의 가면 극, 귀족층을 위한 가면극, 궁정의 가면극, 원래 귀족과 궁정에 봉사하는 가면극이었다가 후대에 민중을 위한 가면극으로 바뀐 민간가면극, 무대 예술로서의 가면극, 민속가면극, 종교 사원의 가면극, 종교축제의 가면극 등 매우 다양한 기능과 목적을 가진 가면극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002) 현재 아시아에는 춤 위주로 연행되는 가면무와 대사·노래·춤·연기 가 어우러진 연극으로서의 가면극이 다양한 기능과 목적을 갖고 전승되 고 있다. 이것들은 원래 주술적·종교적 성격이 강했지만 후대에는 예술 적 성격을 지닌 전통공연예술로 자리잡았다.
춤 위주로 연행되는 가면무
한국 북청사자놀음, 강릉관노가면극.
중국 강서성 남풍현(南豊縣) 석우촌(石郵村)의 나희(儺戱), 운남성 초웅(楚雄) 쌍백 현(雙柏縣) 도호절(跳虎節)의 노호생(老虎笙) 등.
일본 아이치현(愛知縣) 도에이정(東榮町) 나칸자키(中在家)의 하나마쓰리(花祭), 이 와테현(岩手縣) 미야코시(宮古市)의 구로모리가구라(黑森神樂), 미야자키현(宮崎 縣) 시이바촌(椎葉村)의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の枝尾神樂) 등대부분의가구라.
티베트 상야사(桑耶寺)의 참, 탑이사(塔爾寺)의 참, 찰십륜포사(扎什倫布寺)의 참 등 라마교 사원에서 전승되는 대부분의 참.
부탄 라마교 사원에서 전승되는 대부분의 참.
네팔 마하깔리 퍄칸(Mahakali Pyakhan).
인도네시아 발리의 짤론(Calon) 아랑(Arang).
대사,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진 연극으로서의 가면극
한국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수영야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동래야류, 강령탈 춤, 송파산대놀이, 은율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 가산오광대 등 대부분의 한국 가면극. 중국 안휘성 지주시(池州市)의 나희(儺戱) 호도신희(嚎啕神戱), 하북성 무안시(武安 市) 고의촌(固義村)의 나희, 귀주성 덕강현(德江縣)의 나당희(儺堂戱), 귀주성 안순현 (安順縣)의 지희(地戱), 사천성 중경(重慶) 유양현(酉陽縣)의 양희(陽戱), 호남성 임무 현(臨武縣) 유만촌(油湾村)의 나희 무악나신(舞岳儺神), 청해성 민화현(民和縣) 삼천 (三川) 납돈절(納頓節)의 나희 등 대부분의 중국 가면극인 나희.
002_ 전경욱, 『주술·상징·예술 세계의 가면 문화』, 민속원, 2017.
일본 노(能).
티베트 민간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인 라모(拉姆).
태국 콘(Khon), 콘(Khon) 소드(Sod), 마노라(Manora) .
캄보디아 르카온 카올(태국의 콘과 유사한 공연 방식, 그러나 콘은 궁중 전승이지만 르카온 카올은 민간 전승).
인도네시아 자바의 와양 또뼁(Wayang Topeng), 발리의 와양 웡(Wayang Wong), 발리 의 또뼁(Topeng)
베트남 탄호아(Thanh Hoa) 토 쑤앙(Tho Xuan)의 쑤앙 파(Xuan Pha).
스리랑카 산니(Sanni) 가면극, 콜람(Kolam), 소카리(Sokari)
이상과 같이, 아시아에는 가면을 쓴 등장인물이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 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연기하는 연극적인 성격을 띤 가면극들도 매우 많이 전승되고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가면극들은 그 기원이 자 생적이든 외래적이든, 모두 일단 성립된 후에는 계속 새로운 내용을 수 용하고 재창작하면서 발전해 온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가면극들은 시대 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 발전하면서 각국의 특징적 예술 성을 갖춰온 것이다.
한국 가면극의 주술성과 예술성
한국의 가면극은 놀이를 시작하면서 악귀를 쫓고 놀이판을 정화하는 벽 사적 의식무 과장, 계율을 어기고 파계한 불교 승려를 풍자하는 파계승 과장, 서민층을 억압하는 양반층의 위선과 비리를 폭로하는 양반 과장, 처첩 간의 삼각관계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횡포를 풍자하는 영 감·할미 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 있다. 이는 기존에 각 기 별도로 전승되던 양반 풍자의 유희(儒戱), 파계승 풍자의 만석중춤, 그리고 처첩의 삼각관계를 다룬 영감과 할미춤 등을 결합해 하나의 가면 극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한국 가면극은 독립된 여러 내 용이 모여 하나의 가면극을 구성하는 옴니버스 스타일이 특징이다. 마을굿놀이에서 생겨난 가면극들은 풍농풍어와 벽사진경을 기원하는 주술적 기능이 강하지만, 예술적 성격도 갖고 있다. 본산대놀이 계통 가 면극들은 18세기에 생겨난 사회풍자의 성격을 띤 연극으로서 예술가면 에 해당하지만, 여전히 주술적 측면도 간직하고 있다. 현전 한국 가면극은 대부분 연극적 성격을 띤 공연예술이지만, 동시에 풍농 기원의 장자마리, 성황신을 상징하는 신성가면으로서의 각시 등이 있다. 그리고 나례에서 악귀를 쫓는 구나(驅儺) 형식을 연극적으로 승화 시킨 오방신장, 취발이와 노장, 말뚝이와 양반, 팔먹중, 연잎과 눈꿈쩍 이, 북청사자 등도 있다.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주제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으로 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민중의식을 반영하 고 있다. 양반의 신분적 특권, 노장의 관념적 허위, 영감의 남성적 횡포 는 봉건사회의 유물이다. 이 부정적 유물이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면극의 주제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의식의 발전을 엿볼 수 있다. 아울 러 긍정적 인물인 취발이·포도부장·말뚝이·할미를 통하여 기존 질 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민중의식을 보여 준다. 특히 이전의 잡기 수준의 탈춤을 혁신적으로 개작해 연극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춤으로써, 예술적 성격을 갖춘 전통공연예술로 자리잡았다.
04_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와양 웡 〈라마야나〉.
왼쪽 한가다(빨간원숭이), 가운데 라마와 락스마나, 오른쪽 하누만(하얀 원숭이)
05_스리랑카의 〈콜람〉에서 술을 마시고 누워 있는 북 연주자를 그의 아내 논치가 팔꿈치로 세게 가격하는 장면
06_ 하회마을 성황신인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각시
07_ 〈강릉관노가면극〉의 장자마리
08_〈양주별산대놀이〉에서 포도부장이 샌님으로부터 소무를 뺏고 있는 장면
-글. 전경욱(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