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탈춤 전승의 현재와______사회·문화적 역할
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인류는 탈을 쓰고 주술적 ·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켜 왔다. 우리의 전통문화 인 탈춤에는 이러한 전 세계적인 보편성도 있고, 고유의 독특함도 가 진다. 춤, 재담,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고, 그것을 유쾌하고 신명나게 공론화한다. 그리고 시대를 거쳐, 세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수되고 있는 탈춤은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갖는다.
탈문화의 편재성과 한국의 탈춤
탈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그 분포 역시 전 세계적이다. 동 시에 탈의 존재는 특정 시간에서도 자유롭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 지는 전통문화가 탈이다. 인류 문화에서 탈이 시공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탈을 쓰고 다른 무엇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은 탈을 쓰면서 자신의 주술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주술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초월의 욕망을 충족하고, 예술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일탈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탈을 쓰는 것이다. 탈을 쓰고 욕망 을 충족시키려는 인간들의 문화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두루 존재한 다. ‘편재(遍在)’라는 표현이 적절한 전통문화인 것이다. 탈을 쓰고 춤을 추거나 말하고 노래하는 방식의 연행 역시 세계 곳곳에 서 찾아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인류 보편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이 탈을 이용한 연행이다. 한국의 경우 탈을 이용한 대표적인 연행이 탈춤이다. 한국의 탈춤은 전 세계적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나름의 독특 함을 가지고 있다. 춤, 재담,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 할 만한 한국 탈춤의 독특함이다. 춤과 재담과 노래를 통하여 전달하는 탈춤의 내용이 중세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한 대상과 주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종교인의 관념적 허위와 이중성, 양반의 오만함과 무지, 남성 우위 사회의 모순과 서민 생활의 애환 등이 탈춤에서 표현된다. 이 는 한국의 탈춤이 형성되고 그 꼴을 갖추던 시기의 사람들이 문제시하던 주제들로, 당대의 비판적 주제들을 유쾌하고 신명나게 공론화한 참여 예 술이라 할 수 있다.
근·현대 탈춤 전승의 양상
현전하는 한국의 탈춤은 다양하다.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만 해도 14종목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탈춤의 전승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 았다. 특히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근·현대의 곤경은 탈춤 전승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일제강점 말기의 전시 상태, 그리고 해방에 곧바 로 이어진 남북한의 전쟁 상황은 비단 탈춤뿐만 아니라 다른 그 어떤 것 도 제대로 전승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탈꾼들은 몸이 기억하는 탈춤을 전승해왔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탈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
이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을 통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승하고 있었던 탈춤들이 포착되었고, 1960년대의 무형문화재 제도를 통해서 보 다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탈춤 전승자들의 노력 역시 한 국 탈춤 전승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정부 정책에 탈춤 전승자들의 적극적 호응이 없었다면 탈춤의 전승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국 가의 관리와 보호 정책 속에서 탈춤은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춤보존회에서는 일정한 전승지원금 을 국가로부터 받고 있다. 탈춤보존회는 각각의 상황에 맞추어 전승에 힘쓴다. 전승의 토대가 될 탈춤 정본의 마련, 체계적인 전수 교육을 위한 기본춤의 구성, 사라진 대목이나 춤사위 탐구와 복원 노력 등이 탈춤보 존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탈춤보존회는 한적한 시골에서, 자 그마한 소도시에서, 고층빌딩이 들어선 대도시 번화가 등에서 당당하게 ‘OOO 보존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대의 전통을 구현하고 있다. 보존회 에서는 ‘인간문화재’라 불리는 명인이 있고, 여전히 어깨춤이 어색한 전 수자도 있다. 그들은 개개인의 다름을 탈속에 감추고, 함께 하는 춤과 재 담을 흩뿌리고 있다. 보존회를 중심으로 한 전승 활동의 결과, 현재 탈춤은 한국인이라면 누 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전통연희로 자리잡았다. 고성오광대보존회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탈춤 전수 교육 경험자가 4만 명이 넘는 보 존회가 존재하기도 한다. 2019년 제6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고성오 광대보존회가 대통령상을 받은 것 역시 좋은 사례가 된다. 7~80명이 되 는 고성오광대 전수 교육 경험자들이 추는 고성오광대 덧배기춤은 좌중 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한국 탈춤 전승사에서 주목할만한 현상
한국 탈춤의 전승사에 있어 주목할만한 현상은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전 승 활동이다. 대학생들의 탈춤 전승활동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 루어졌다. 대학생들이 탈춤의 전승자이자 향유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 다. 1969년 부산대학교를 시작으로 1970년대에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 대, 서강대, 고려대 등에서 탈춤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탈춤 공연이 벌어 졌다. 1980년에 이르러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탈춤 동아리가 만들 어졌다. 흔히 이 시기를 ‘대학 탈춤의 시대’라 부르고, 그 움직임을 ‘탈춤 부흥 운동’이라 부른다.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가 탈춤을 즐겼고, 직접 전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무형문화유산 전승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보존 회에서 직접 배운 탈춤으로 정기공연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축제 행사 나 대학 간의 교류 공연, 위문 자선 공연, 각 지역 사회의 행사 참여 등으 로 활동의 폭을 넓혔다. 또한, 탈춤 전승 현장 조사, 탈 제작 전시회, 세미 나 등의 활동 역시 수행했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탈춤 부흥 운동은 우리 문화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학생들의 탈춤 전승은 ‘오늘날 과거의 탈춤을 왜 추는가’에 대하여 끊 임없이 자문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전통적 탈춤을 배우고, 단절되 었던 탈춤을 복원하기도 했다. 서강대학교 탈춤 동아리의 가산오광대 복 원이나, 1990년대 진주 지역의 문화운동 차원에서 복원한 진주오광대가 대표적 사례이다. 대학생들의 활동은 전통탈춤의 단순 전승이나 복원 작 업에 멈추지 않았다. 민족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태도에서, 탈춤에 반영 된 민중의 실체에 관심을 가지고 탈춤의 창조적 계승을 모색했다. 그 결 과 창작탈춤이 등장했다. 전통탈춤을 바탕으로 민중적 해학과 풍자라는 비판의식을 담은 당대의 탈춤을 만든 것이다. 나아가 마당극이라는 새로 운 공연 양식을 창출하기도 했다. 대학교 축제의 대명사인 ‘대동제(大同 祭)’를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었다. 1983년 고려대에서 시작해 1980년대 후반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벌어졌던 대동제는 대학 축제의 이름을 바꾸었고, 그 축제의 중심에는 탈춤 동아리와 그들의 탈춤 공연(전통탈 춤, 창작탈춤, 마당극 등)이 자리하게 됐다.
탈춤의 당대적 의미와 역할
보존회를 통한 전승과 대학교 동아리를 통한 계승 활동에 힘입어 오늘날 탈춤은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문화가 되었다. 나아가 지역 정체 성 구축의 구심으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탈춤은 지역을 기반으 로 전승되고 있다. 이는 각 탈춤의 명칭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탈 춤, 산대놀이, 오광대, 야류, 탈놀이, 가면극 등의 명칭 앞에 지역 이름이 반드시 병기된다. 이미 해당 지역에서는 그 탈춤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 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탈춤의 재담은 그 지역의 언어로 되어 있 고, 그 지역에만 전승되는 민요가 탈춤에서 불린다. 등장인물 또한 그 지 역 사람들의 특색을 닮았다. 그런 만큼 탈춤은 지역 사람들에게 있어 자 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나 정체성을 심어주는 문화의 상징이자 구심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탈춤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선조 들이 즐겼던 문화유산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탈춤 이 전하는 내용이 탈춤이 형성되고 그 꼴을 갖추던 조선 후기에 문제시 하던 것이라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역사적 거리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탈춤이 문제 삼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 평등에 대한 것이 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을 유쾌하고 신명나게 공론화 하는 방식 역시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오늘날에도 인간의 보편적 평등에 대한 문제를 참여 예술의 한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에 탈춤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오늘날 탈춤의 의미와 역할은 ‘한국문화의 대표 상징과 지역 정체성 구 축’과 ‘인간의 보편적 평등에 대한 문제를 유쾌하고도 신명나게 공론화하 는 참여 예술의 좋은 사례’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탈춤이 해야 할 미래의 역할과 책임 하나를 덧붙여 본다면, 그것은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의 첨병 역할이다. 주지하다시피 남북한이 함께 전승하고 있는 것이 탈춤이다. 특히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북청사자놀음 등은 한반 도 차원에서 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탈춤이 수행해야 할 오늘날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탈춤판을 벌이던 우리의 목적은 크게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작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크게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탈춤을 벌이던 우리가 지향하 는 것이다. 화합과 연대, 그리고 평화를 지향하는 대동의 어우러짐이 탈 춤판에서 구현되었다. 지속해서 추구해 온 탈춤판의 정신을 이제 제대로 드러낼 때가 온 것이다. 이는 탈춤의 또 다른 전승이 이루어지는 출발선이 자, 탈춤에 부여된 당대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01, 02_ 2017 전국 대학생 마당놀이 축제
-글. 허용호(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