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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유산으로서의 탈문화
글. 박상미(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사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협약 홈페이지
유네스코 유산으로서의 탈문화
‘한국의 탈춤’이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2019년 12월 6일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 분과와 무형문화재위원회의 합동 회의에서 결정된 일이다. 이제 탈춤에 001) 관한 등재신청서가 올해 3월말의 기한에 맞추어 제출될 것이고, 순조 롭게 심사 일정이 진행된다면 2022년 말에 등재 결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해당 유산과 관련된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등재 신청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등재 신 청은 말 그대로 등재를 위한 시도이자 시작일 뿐, 심사를 통해 등재 결정 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유산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고려해 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유산의 등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서술 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된 다른 나라의 탈 관련 무 형유산 몇 건을 비교분석하여, 우리의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 표목록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어떤 면을 부각시켜야 할 지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등재 신청에서 결정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을 위해 준비할 자료는 다양하다. 이제 까지 우리 나라가 등재에 성공한 20건의 무형유산과 마찬가지로 탈춤은 대표목록에 등재 신청될 예정이다. 우선, 유네스코의 양식에 맞추어 유 네스코 협약이 정의하는 무형유산으로서의 탈춤에 관해 신청서를 작성 해야 한다. 이것을 심사할 유네스코의 기구는 무형유산 관련 전문가 12 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무형유산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탈과 탈춤에 관해서는 충분한 배경 지식이 없을 수 있고, 현행 제 도상 신청서의 내용만을 대상으로 심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설득력있는 신청서 작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국내의 “무형문화재” 개 념과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의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유네스코 유산의 정의에 부합하는 내 용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국내의 무형문화재법에002) 포 함된, 유산의 “전형” 개념이나 “역사성”에 관한 내용보다는 공동체에 의
‘한국의 탈문화’가 등재 신청 준비 과정에서 국제적, 시대적인 기대와 기준을 잘 반영하여, 더 나아가 등재 신청 과정 자체가 문화 다양성을 보호하고 진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01_헝가리, 모하치의 부소 축제: 봄맞이 가면 카니발 풍습
02_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한국의 탈춤
03_말리, 마르칼라에서 연행되는 ‘탈과 꼭두각시의 등장’
04_태국, 콘, 태국의 가면 춤극
해 대표성을 인정받으며 활발히 연행되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탈문 화에 관한 설명이 중요할 것이다. 신청서와 더불어 제출하게 되어 있는 영상 자료는 신청서의 내용을 압축하여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보 기 좋은 영상의 제공보다는 무형유산의 보호와 전승이 주된 내용어야 한 다. 이 외에도 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공동체, 보유자 등이 신청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 등이 포함되게 된다. 이런 준비 과정 을 거쳐 탈춤의 신청서가 올해 3월말까지 제출되더라도 실제 심사 과정 의 시작은 1년 정도 늦춰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등재국가인 우리나 라는 2년에 한 번씩의 단독등재 심사를 받게 되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더라도 약 18개월 걸리는 등재심사와 결정은 2021년 4월에 시작하여 2022년 연말 즈음에야 끝나게 될 것이다.
유네스코에 이미 등재된 탈문화 관련 유산들
유네스코 무형유산 목록 등재와 관련하여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의 하 나는, 다른 나라의 비슷한(또는, 거의 똑같은) 유산이 이미 유네스코 유 산이 되어 있는 경우, 또 다른 나라가 자국의 유산을 등재 신청할 수 있는 지, 혹은 하더라도 불이익이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유네스코는 비 슷한 유산을 가지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관련된 국가들이 공유하는 유산 은 공동으로 등재 신청하는 것을 권장한다. 등재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문화적 소통과 협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형유산이 연행되 는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맥락이 다른 경우, 각각의 유산은 고유한 특 성을 가지는 것이고, 해당 공동체가 다른 문화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이 단독으로 유사한 유산의 신청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인류의 역 사에서 매우 다양한 탈문화가 존재해 왔고 오늘날에도 새로운 모습과 형 식의 탈문화가 창의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있고, 수많은 탈문화 관 련 유산이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어 있다. 이에 더해서 한국의 탈문 화가 새로이 등재된다면 이는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보여주 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보호협약(2003)을 기반으로 무형유산의 목록 등 재제도가 시작된 이래, 세계 각국의 다양한 탈문화가 등재되었다. 2019 년까지 총 47건의 탈문화, 또는 탈을 포함한 유산들이 대표목록 혹은 긴 급보호목록으로 등재되었는데, 이 중 아시아 지역에서 16건으로 가장 많 은 탈문화 유산을 등재하였으며, 이어서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이 각각 13건, 12건의 등재 탈문화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역시 6건의 탈문화 사례를 등재하여, 탈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보편 적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세 건의 유산을 예로 들 어 탈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 보고, 이 유산들이 등재 과정에서 강조 하고 심사 기구의 긍정적 평가를 받은 요소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01_헝가리, 모하치의 부소 축제: 봄맞이 가면 카니발 풍습
02, 06_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한국의 탈춤
03_말리, 마르칼라에서 연행되는 ‘탈과 꼭두각시의 등장’
04, 05_태국, 콘, 태국의 가면 춤극
001_ 정확한 등재 신청 종목명은 신청서 제출 시에 확정 예정이다. 이 글에서는 맥락에 따라 ‘탈춤’, ‘탈문화’ 등을 명칭으로 사용한다.
002_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2016)
헝가리, 모하치의 부소 축제: 봄맞이 가면 카니발 풍습(Buso festivities at Mohacs: masked end-of-winter carnival custom, 2009년 등재)
헝가리 남부에서 연행되는 ‘모하치의 부소 축제’는 겨울의 끝을 축하하는 카니발로 2월 말에 6일 동안 진행된다. 축제의 핵심은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털로 짠 커다란 망토를 걸친 500명 이상의 부소(Buso)들의 시내 행 진이다. 이 축제는 모하치지역 크로아티아계 소수민족 행사로 시작되었 지만, 현재는 모하치를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심사기구는 모하치의 부소축제가 크로아티아계 소수민족과 헝가리, 독일, 세르비아 등의 여 러 이웃 공동체가 함께 탈을 쓰고 춤을 추며 행진하며 여러 민족 간의 화 합을 도모한다고 평가하였다. 부소 축제의 대표목록 등재는 문화 다양성 및 전승자의 창의성을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나아가 지 역 공동체간 문화적 교류를 촉진하는 화합의 장으로서 부소 축제의 역할 에 주목하였다.
말리, 마르칼라에서 연행되는 ‘탈과 꼭두각시의 등장’(Coming forth of the masks and puppets in Markala, 2014년 등재)
말리의 마르칼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탈과 꼭두각시의 등장’은 인간과 자 연 사이의 신성한 연결을 보여준다. 니제르강 유역에서 행해지는 의식과 기도, 음악, 노래, 춤으로 구성된 이 유산은 지역 문화의 다양한 표현을 위 한 장을 제공해 왔다. 심사기구는 이 유산이 공예기술, 음악, 춤 및 노래가 결합된 높은 수준의 예술적 표현이며, 특히 다양한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 는 관습으로, 문화 다양성에 기반한 대화와 존중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 이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이 사례는 탈문화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외 심을 나타내는 표현임을 보여주고, 탈문화 축제를 통한 공동체간 갈등 해 소 및 상호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문화적 기능을 가졌음을 시사한다.
태국, 콘, 태국의 가면 춤극(Khon, Masked dacne drama in Thailand, 2018년)
공유되는 도덕적 원칙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며,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면 춤극이다. 심사기구는 콘이 태국 사회에서 문화적 소통의 수단이자, 태국 민족의 문화 정체성 인식을 강 화하는 사회적 기능을 한다는 데 주목하였다. 또한 콘의 다양한 유파 간 교류를 통한 혁신적인 가면제작 등 새로운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으 로 기대하였다. 무엇보다 콘의 현대적인 양식에 담긴 전통적 요소와 인 류의 창조성의 결합은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하였다
등재사례의 시사점들
이상의 세 사례에서 보듯이 전 세계에서 널리 다양하게 창작, 전승되고 향유되고 있는 탈문화는 그것을 연행하는 공동체 일상의 구심점이자, 인 류 창조성의 결과물이다. 특히 탈 제작의 공예적인 측면이나 탈춤의 기 예적 측면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동 시에 해당 사회에서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포함하는 총체 적인 문화 개념으로서의 무형유산을 평가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가 면을 써서 다른 존재로 변화하고, 가면의 힘을 빌려 표현하고자 했던 것 들은 인류 공통적인 심성과 염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각각 의 공동체가 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만들 어지고 연행되는 것이 탈문화의 다양성일 것이다. 이 세 건의 탈문화 관 련 유네스코 등재 유산 사례들에 관한 심사기구의 등재 권고는 공통적으 로 문화 다양성의 보호·진흥, 사회 통합에의 기여, 인류 창조성의 원천 으로서의 무형문화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한국 의 탈문화’가 등재 신청 준비 과정에서 국제적, 시대적인 기대와 기준을 잘 반영하여, 다양한 관련 공동체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열 린 소통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등재 신청 과정 자체가 문화 다양성을 보 호하고 진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유네스코가 매년 강 조해 온 바와 같이 등재 자체가 하나의 목표점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다 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는 보다 큰 틀의 한 부분으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인류무형문화유산협약(2003)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UNESCO. (https://www.unesco.or.kr/data/standard/view/6/page/60 재인용.)
-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https://ich.unesco.org)
- 유네스코와 유산-UNESCO&HERITAGE(http://heritage.unesco.or.kr/)
- ‘한국의 탈춤’ 내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도전, 연합뉴스(2019년 12월 6일) (https://www.yna. co.kr /view/AKR20191206095600005?input=1195m)
-글. 박상미(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사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협약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