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글. 안태욱(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장)
宗家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공동체, 종가문화 전승을 향한 노력
문화는 쌓임과 변화다. 한국은 1세기 전 타자로 인한 과거와의 단절 경험으로 원 형, 원조, 전통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회 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때 격한 사회 반 응과 복원과정에서 이러한 형식성을 극명 하게 드러냈다.
02_ 서계 박세당 불천위제사
03_ 반남 박씨 종손과 종부
01_ 반남 박씨 종가
02_ 서계 박세당 불천위제사
03_ 반남 박씨 종손과 종부
04_ 재령 이씨 종손과 종부
05_ 재령 이씨 이시명 종가 상차림
종가문화 전승,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보다 한국 사회가 더 전통문화 기반의 국가로 발전하였는가 하는 질 문에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삶 자체가 전 통인데, 시공을 초월하여 조선 시대에서 그 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법론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전통 복원, 전승의 노력으로 많은 문화 현상들이 회복되고 삶 속의 생활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약 500여 종가가 전승되고 있다는 희망적 인 소식도 있다. 종가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마지 막 보루라 할 수 있다. 특히 제례와 음식 문화가 핵심이다. 이들 종가는 근대사의 굴곡을 이겨내고 변화를 통해 생명력을 보존, 전승해오고 있 다. 집안과 집안,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이어주는 문화공동체이다. 서울 퇴계로에 있는 한국의집은 경복궁 자경전을 모태로 80년대 초 건축 되어 궁중음식, 혼례 등 생활문화를 보급하는 명소다. 현행 음식문화는 궁중음식 보유자 한복려의 지도로 왕가음식문화를 본으로 재현된 찬품 들이다. 기존 궁중음식과 더불어 또 하나의 본을 전국에 산재한 종가문 화, 음식에서 발굴하여 상품화하는 과제를 고민할 때다. 지난해 한국문화재재단은 전통문화 뿌리 찾기의 일환으로 여러 종가 등 을 답사하고 종가음식 촬영, 대학생 체험 등 사업을 진행하였다. 올해는 이들 종가음식의 본을 한국의집과 연계, 실용화해서 새로운 음식문화를 상품화하려고 한다. 또한, 네 종가의 유래와 문화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향후 네 차례에 걸쳐 종가별 특징 등을 구체화하여 한국의집과 연계한 활 용 방안을 연재할 예정이다.
세월의 변화를 예견한 ‘서계 박세당 종가’
현 반남 박씨는 박응수를 시조로, 고려 말 향리 가문으로 출발하여 조선 후기 최고 문벌로 발전한 집안이다. 박세당의 10대조인 박상충(1332~ 1375) 대에 와서 사대부 가문으로 성장하였고, 나주에서 개성 등지로 거 주지를 이동하였다. 박세당은 네 살 되던 해 부친이 별세하는 불운을 극복하고 병조좌랑, 춘 추관 기사관 등을 역함하였다. 후일 현종의 잦은 실정에 실망하고 수락 산에 은거하여 실학자로서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현재 종손 박용우와 종부 김인순이 종가를 잇고 있다. 다행스럽게 차종손과 종부가 함께 생 활하고 있어 반남 박씨 종가문화의 전승 미래는 밝은 편이다. 종가는 서계와 서계의 부친 박정 두 분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불 천위 제사는 후손들의 참여 등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10월 3일 공휴 일 낮에 함께 지내고 있다. 필자가 친견한 불천위제사상은 간결하다. 서
06_ 장흥 고씨 고인후 종가 종손과 종부 07_ 장흥 고씨 고인후 종가_사당
계 선생이 후손에게 이른 『계자손문』의 전통에 따라 밥, 대추 등 일곱 가 지의 과일, 삼포(육포, 대구포, 북어포), 어전을 비롯한 세 가지의 전 등 기본적인 차림에 잡채와 편육 등 일상의 음식들이 더해진다. 서계 집안의 상차림은 실학정신에 기반,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중부지방 특유의 혼합된 모습이다. 현 의정부와 황해도(친정어 머니), 개성(시어머니) 등 세지역의 음식문화가 융합된 것이다. 보쌈김 치, 되비지탕, 빈대떡을 비롯하여 냉면 등이 한데 어우러진 은근하면서 도 진한 풍미를 느끼는 찬품들이다.
난민 구제에 힘썼던 두들마을과 ‘재령 이씨 종가
영양읍에서 차로 20여 분을 가면 언덕 위의 두들마을에 이른다. 이 마 을은 고종 무렵 백성을 위한 의료 구휼을 담당한 광제원이 있던 곳이다. 1640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석계(石溪) 이시명도 병자호란을 피해 이 곳으로 이주하였다. 현재 두들마을은 조선 중기 문인 석계 이시명과 더불어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부인 장계향으로 더욱 유명하다. 두들마을은 석계 집안이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이후 재령 이씨의 집성 촌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근년에 영양군 주관으로 건립한 장 계향문화체험교육원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교육원은 장계향 추모공간, 전통휴양공간, 전통음식 체험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음식디미방에는 국수, 어육류, 채소류, 주류 등 146가지의 조리법이 상 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 종손인 이돈과 종부 조귀분의 노력으로 만두 법, 세면법, 꿩고기짠지, 동아누르미 등 50여 종의 음식과 감향주, 유화 주, 행화춘주 등 10여 종의 술이 복원되었다. 음식디미방은 제철 식재료로 맛을 살리고 약식동원 또는 식즉약이라는 개념을 중시하고 있다. 아울러 채소류나 해산물, 어류 위주의 저칼로리, 기능성 음식으로 찌거나 굽는 것이 특징이다. 동아누르미, 숭어만두, 꿩 고기김치 등을 위주로 구성한 칠첩반상과 다과상은 자연음식으로서 석 계종가 음식의 품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식단이다. 강한 양념류 등 자극 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건강식으로 안성맞춤이다.
호남 의병의 중심, ‘장흥 고씨 고인후 종가’
오늘날 전남 담양 창평은 장흥 고씨 집성촌이다. 장흥 고씨의 후손 중 대 표 인물로는 의병장 고경명이 있다. 임란 때 제봉 고경명이 말 위에 올라 전쟁터로 나가면서 작성한 마상격 문은 오늘날까지도 식자층에 회자되고 있다. 고경명의 이러한 기개와 충
06_ 장흥 고씨 고인후 종가 종손과 종부
07_ 장흥 고씨 고인후 종가_사당
08_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_종손과 종부
09_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_종부
정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후일 의병운동과 인재양성으로 보답한다. 현 창 평에 있는 고씨들 본향은 장흥이지만, 이곳에 많이 사는 관계로 창평 고 씨라고도 한다. 이들은 호남 4대 명문 중 하나이다. 호남 4대 명문은 관 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울산 김씨 하서(河西) 김인후 집안, 향주 기씨 고봉(高峯) 기대승 집안, 장흥 고씨 제봉(霽峰) 고경명과 고인후 집안, 연 일 정씨 송강(松江) 정철 집안이다. 현재 창평에 있는 고씨는 제봉 고경명 후손들이다. 고제봉의 다섯 아들 가운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제봉과 같이 전사한 아들이 둘째인 학 봉(鶴峯) 고인후이다. 현 종손 고영준과 종부 이숙재는 근대기에 망한 집안의 아픈 역사 굴레를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다. 흔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없고 재실을 제외하 면 종택은 평범한 농가 모습이다. 지난해 8월 촬영을 위해 ‘손님상’을 주제 로 화려한 음식이 차려졌다. 400년 가문의 전통을 정점에서 잇고 있는 종 손과 종부가 조상에게 올리는 상이다. 보리굴비와 떡갈비, 죽순나물, 백 김치와 장아찌, 전복초 등으로, 종부가 집안의 전통을 잇기 위해 어렵게 복원한 귀한 음식들이다. 호남 특유의 푸짐함에 칠절판의 화려한 모습은 이 집안이 사대부가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지역의 제철 식재료와 듬뿍 담아낸 손님상차림은 집안의 아픔을 넘어 새로운 식문화의 본을 만 드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선최락(爲善最樂) 실천의 장,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
보성 선씨는 고려 시대 예의판서, 우문각대제학을 지낸 선윤지를 시조로 한다. 호는 용암(龍菴) 또는 퇴휴당(退休堂)으로 알려져 있다. 선윤지는 원래 명나라 문연각 학사로 1382년(우왕8)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 화한 인물이다. 21대 종손인 선민혁에 따르면, 종택이 보은으로 자리 잡은 것은 증조부 인 선영홍 때부터다. 선영홍은 1903년 전남 고흥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 겨왔다. 이후 1919년부터 24년까지 아들 선정훈과 함께 현재의 종택을 건립했다. 선씨 집안은 일제강점기부터 관선정을 설립해 민족교육에 힘 써왔으며 최근까지도 고시원을 운영해왔다. 이러한 집안의 전통 때문에 책거리상으로도 유명하다. 책거리상은 새우전, 쇠고기완자탕, 육회, 민 어부레순대, 청포묵 등으로 간결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더해주는 찬품들 이다. 특히 수백 년을 이어온 간장과 고추장에 보은 지역의 특산물인 대 추를 활용하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 김정옥 종부는 조상 제사와 더불어 음식 만드는 일을 종교라 생각하 며 학생, 일반인을 위한 음식과 상차림 교육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도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졸업한 차 종손이 부모님을 모시고 함 께 종가의 맥을 잇고 있어 앞날이 밝다.
-글. 안태욱(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