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전통문화 기반 조성을 위한 40년의 발자취.
재단을 이끌어온 주역들
글. 허주희(작가)
01.
박종국 초대 이사장(왼쪽 첫 번째)
한국의집 전통혼례, 문화재 애호 사업 등 기틀 마련
재단의 위대한 출발, 그 여정을 함께하다
1980년 태동 이후, 한국문화재재단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줄기차게 달려왔다. 40년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오는 동안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고가 깃들어 있다. 특히 박종국 초대 이사장을 비롯해 14대 서도식 이사장까지 역대 이사장들은 한국문화재재단을 이끌어 온 주역들이다. 재단의 위대한 출발, 그 여정을 함께한 이사장들의 업적과 면모를 살펴본다.
02.
2대 김종설 이사장(가운데)
재단 창립 5주년 기념식 등 전통문화를 대외에 소개하는 홍보활동을 펼침
1980년 태동기,
전통문화 수호의 깃발을 들다
1980년 ‘소중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명맥을 잇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지금의 한국문화재재단이 탄생했다. 정부의 문화재보호관리단체 통합계획 수립에 따라 1980년 4월 1일, 재단법인 한국문화재보호협회가 출범했으며 박종국 이사장(사진1)이 초대 수장을 맡았다. 설립 초기에는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을 비롯해 전승공예대전과 문화재 보호 운동에 주력했다.
1985년까지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박종국 이사장은 한국의집 전통혼례를 널리 알리는 사업을 비롯해 무형문화재전수회관 개관 및 국민적 염원이 깃든 독립기념관 건립에도 앞장서는 등 재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만전을 기했다. 특히 지금도 ‘한국의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전통혼례인데, 이 전통혼례는 1982년 시작해 국내는 물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우리의 혼례 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전통혼례를 대중화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됐다.
03.
3대 박호준 이사장(가운데)
서울놀이마당 공연과 문화유산답사, 음식큰잔치 등 사업 확장
04.
4대 김치곤 이사장(오른쪽)
기관 명칭을 재단으로 바꾸어 사회단체 수준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성공
1980년대 후반,
기관의 위상과 이미지를 높여나가다
198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세계만방에 알린 시기다. 바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국가 이미지를 한껏 높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전통문화가 널리 알려지고, ‘한국의집’이 한국의 대표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면서 재단의 자립 기반 또한 탄탄하게 구축됐다.
2대 김종설 이사장(사진2)은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재임하며 1985년 4월에는 창립 5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같은 해 10월 9일, IMF 총회 사절단을 위한 리셉션과 기념공연을 한국의집에서 개최하는 등 전통문화를 대외에 소개하는 홍보 활동을 펼쳤다. 11월에는 서울놀이마당 개관 1주년 기념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1986년 4월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전통문화아카데미’를 열었고, 전국적으로 문화원, 언론사 문화센터 등에서 전통문화 강좌가 개설되는 등 전통 교육 과정이 활성화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3대 박호준 이사장(사진3)이 재임했다. 이 시기에는 서울놀이마당 공연과 문화유산답사, 문화재 애호 캠페인 등 사업이 확장됐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1987년 국내 문화유산 답사를, 1989년 해외 문화유산답사를 시행해 문화답사의 붐을 조성했고 문화재 애호 사진공모전 등 문화재 애호운동을 전개했다. 이 밖에 학술 세미나를 비롯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발표 공연, 전통문화 재현 행사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보다 심도 있게 전통문화 보급 사업을 펼쳐나갔다.
1990년대 재단으로 새 출발,
성장과 발전의 토대 마련
1992년 4월, 4대 김치곤 이사장(사진4)이 취임하면서 재단 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그해 9월 1일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한국문화재보호협회에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으로 명칭을 바꿈으로써 사회단체 수준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재단의 심벌과 상징색, 로고도 바꾸었다. 1993년에 열린 대전엑스포에서는 재단의 축적된 역량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엑스포 놀이마당을 운영, 흥과 신명의 한마당을 펼치며 큰 호응을 얻었다. 1994년부터는 한국의집에서 매년 음식 큰잔치를 개최해 이용객들에게 먹거리와 공연 등으로 즐거움을 주었으며 한국의집 전통음식강좌를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재단 창립 15주년을 맞은 1995년은 ‘제2의 창업’이라는 사명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선포했다. 이 시기에는 5대 김전배 이사장(사진5)이 재임했다. 재단은 매장문화재발굴조사실을 신설, 재단의 이름에 걸맞은 업무 영역을 확보했다. 또한 전통공예관을 ‘한국전통공예미술관’으로 바꾸고 옛 민속박물관 자리로 시설을 확대, 이전해 6개 전시실과 12개 공방을 운영했다. 이밖에 한국 음식에 대한 학술적 자료를 알리고자 「한국음식대관」을 발간했으며 재단의 전통문화 보존, 전승의 실적 등을 수록한 「월간 문화재 축쇄판」을 발간했다. 1996년 10월부터 1997년 2월까지는 ‘97문화유산의해조직위원회 사무국’을 재단에 설치해 10억 원 규모의 문화유산 기획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를 통해 재단은 대규모 국가문화행사를 수행할 능력과 경험을 축적하였고 이는 재단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재임한 6대 정덕용 이사장(사진6)은 당시 재단의 대표 사업인 ‘전승공예대전’을 공정하게 개최하고, 전통 공예인들의축제와 화합의 장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이즈음 전승공예대전 심사와 관련하여 일부 관계자가 재단 업무 진행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선정 작품(당시 상기호 작가의 ‘건칠지불’)에 대해 과학적 검증을 거쳐 신뢰를 회복했고 이는 재단 역사에 의미 있는 성과로 남았다.
05.
5대 김전배 이사장(오른쪽 첫 번째)
매장문화재발굴조사실을 신설, 문화재재단의 이름에 걸맞은 업무 영역을 확보
06.
6대 정덕용 이사장(왼쪽 두 번째)
‘전승공예대전’을 공정하게 개최, 전통 공예인들의 축제와 화합의 장으로 계승 발전
07.
7대 하진규 이사장(왼쪽 네 번째)
창립 2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남북한 민족문화 교류, 문화재조사연구단 사무소 개소 등 성과
밀레니엄 시대의 서막,
문화 한국의 기반을 다지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2000년은, 밀레니엄 시대의 시작이자 재단 창립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재단은 ‘21세기 도약의 시대, 비전 2010’을 선포하며 전통생활문화 보급과 전통문화체험교육 사업에 만전을 기했다.
7대 하진규 이사장(사진7)은 1999년 9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재임했다. 2000년 6월은 창립 2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남북한 민족문화 교류협력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민족 동질성 회복의 필요성을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또한 독일 통일 10주년을 맞아 개최된 ‘하노버엑스포’에 문화상품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노버엑스포 전시회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 특히 무형문화재의 국제적 경쟁력을 확인했으며 이를 계기로 재단 내에 문화상품 업무를 확장, 현재 궁궐 매장과 ‘인천국제공항 전통문화센터’로 발전하는 터전을 마련했다.
2000년을 전후로 재단은 국가의 큰 행사를 수행하면서 문화한국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8대 서정배 이사장, 2003년과 2004년은 9대 이승규 이사장,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10대 이동식 이사장이 재임했다. 8대 서정배 이사장(사진8)은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여 재단의 숙원사업이던 특수법인화를 마무리했다. 재단은 특수법인화를 통해 정부로부터 사업비와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자원을 개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재단 내에 월드컵행사팀을 설치하고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관광진흥기금 7억 5천만 원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궁행사 불모지에서 재단 인력과 학계의 도움을 얻어 ‘조선시대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을 성공적으로 복원하여 국민적 호평을 받았다. 수문장 교대의식의 성공적인 복원으로 사업이 매년 확대되어 2020년 현재 1백 30억 원 규모로 발전하였고 한국 대표 문화관광축제인 ‘궁중문화축전’이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9대 이승규 이사장(사진9)은 2003년 7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재임했다. 2003년 당시 재단은 ‘한국문화의집’ 개관을 위해 자체자금을 무리하게 투입한 관계로 유동자금 부족 등 적자경영의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해 가을 경영 합리화를 단행하여 한국문화의집 식음료 영업을 중단하고 기능을 공연과 교육장으로 특화하여 재단 수익사업의 적자를 탈피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영업 부분의 부족한 매출 확보를 위해 전주시로부터 전통문화센터를 수탁받아 운영했다. 직원을 현지에 파견하여 경영 개선과 매출 증진에 나섰고 재단이 유동자금 부족으로 인한 경영난을 해소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10대 이동식 이사장(사진10)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했다. 당시 국내의 국토개발 확대 영향으로 문화재조사기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재단 소속 연구원의 유출로 문화재조사 업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력 유출의 근본적인 문제는 낮은 급여가 관건이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재단 내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는 등 긴축경영을 추진하였고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당시 문화부 소속 공공기관의 중간 수준으로 현실화하여 직원 이직률을 감소시키는 등 조직 안정화에 힘썼다. 또한 2006년 전수교육관을 5층에서 9층으로 증축하고 재단 사무실을 지하 1층에서 5층과 6층으로 이전했다. 만성적인 민원 해소를 위해 각 기예능보존단체의 공예 및 예능 연습실을 대폭 확충하는 등 무형문화재 전승활동을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11대 김홍렬 이사장(사진11)이 재임하였으며, ‘일류 문화유산기관’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설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는 ‘한국전통공예특별전’을 열어 우리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등 문화유산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아울러 ‘아태무형유산센터’가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국제기구로 발돋움했다.
10.
10대 이동식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직원 처우 개선 및 전수회관 증축 등 공공기관으로서 기반 조성
11.
11대 김홍렬 이사장(오른쪽)
‘일류 문화유산기관’으로 비전 제시, 국제교류업무 등 확대 기여
12.
12대 이세섭 이사장(왼쪽)
궁궐 재현용품 확충사업, 물류센터 매입, 평가 제도 개선 등 기여
2010년 창립 30주년,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 내딛다
2010년 서른 살 청년이 된 재단은 또다시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2010년 4월 1일 한국의집에서 재단 창립 30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 당시 11대 김홍렬 이사장을 중심으로 이건무 문화재청장 등 각계 인사들과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또한 3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우리의 다짐’을 천명했다. 첫째, 전통문화 진흥사업을 성실히 수행하여 국민의 문화 향유권 증진에 이바지한다. 둘째,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을 전개하여 범국민적 문화재 보호의식을 고취한다. 셋째, 문화유산의 현대적 가치창출에 매진함으로써 관광자원화에 기여한다. 넷째, 다자 간 국제교류 협력을 바탕으로 문화유산의 세계화에 앞장선다. 이러한 다짐을 통해 ‘문화유산 전승 활용과 문화 향유권 확대’라는 미션을 완수하여 ‘일류문화유산기관’이라는 재단의 비전을 달성하고자 했다.
2010년 7월에는 12대 이세섭 이사장(사진12)이 부임해 2013년까지 재임했다. 정부 보조금을 교부받아 궁궐 재현용품 확충사업을 2010년 3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시행했다. 재현용품은 제상, 금보, 옥책함, 죽책함, 소여, 주렴 등을 비롯하여 십이장복, 용교의, 소여, 모란병풍 등이 재현됐다. 재현에는 무형문화재보유자와 전수조교, 이수자들이 참여하여 문화재 활용 기회를 높였다.
2011년 시작된 ‘동아시아 크메르 유적 기초조사 및 라오스 세계유산 복원 종합정비계획연구용역’이 2012년 완료됐다. ODA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 재단 내 국제교류팀이 신설되었고, 2020년 현재 라오스를 비롯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미얀마 바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공적개발 원조사업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 2012년 8월, 64억 원의 자금을 투입, 한국의집 뒤편에 5층 규모의 빌딩을 매입하여 만성적인 사무 공간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문화상품물류센터를 조성했다.
13.
13대 김종진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라오스, 캄보디아와 MOU를 체결하여 장기 지속적으로 문화유산 보존, 복원의 토대를 마련
14.
14대 서도식 이사장(가운데)
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등 전시분야 사업을 통합한 ‘대한민국무형문화재대전’을 킨텍스에서 개최
- 글. 허주희(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