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전통문화 기반 조성을 위한 40년의 발자취.
재단 이름 변천사
글. 안태욱(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장)
재단 성장의 궤를 함께한 ‘재단 이름 톺아보기’
‘이름값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은 개인이나 기관의 탄생, 발전과 운명을 같이한다. 그만큼 기관의 스토리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 이름이다. 40년 전 ‘한국문화재보호협회에서’ 시작해 현재의 ‘한국문화재재단’이라는 명칭에 이르기까지 재단의 이름이 변화해온 과정들을 함께 살펴본다
01_한국문화재보호협회(취선루입구), 02_ 한국의집 현판(1981),
03_한국문화재보호재단(전수교육관입구), 04_한국문화재보호재단(대림빌딩11층),
05_한국전통공예미술관(경복궁 내 건청궁지), 06_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07_ 2014년 8월 문화재보호법을 개정, 한국문화재재단으로 변경, 08_ 현재 재단의 엠블렘과 로고.
전문기관으로서의 확장을 위한 노력을 담아
2020년의 한국은 다원화된 사회지만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정부와 민간 등 이원화되고 경직된 사회였다. 각 산업과 직능분야를 대표하는 ‘∼∼협회’, ‘∼∼조합’ 등이 막 활성화되는 시기였다.
2020년 4월 1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현 한국문화재재단의 모태인 한국문화재보호협회(사진1)는 당시 한국무형문화재보호협회, 한국문화재보호협회, 한국문화재보급협회 등 3개의 사단법인을 통합하여 1980년 4월 1일 발족하였다. 문화재보호협회는 이름 그대로만 보면 문화재를 보호하는 단체다. 보호협회라는 명칭의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 과정에서 파괴·왜곡된 문화재를 보호하고 문화 정체성을 찾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자는 차원이었다. 창립 당시 문화재보호협회는 한국의집(사진2)을 중심으로 창경궁, 경복궁 등 고궁과 왕릉을 비롯하여 주요 사찰, 성곽 등에서 문화재 애호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개최했다. 어린이 청소년 문화재사랑 글짓기 및 그림 그리기대회, 일반인 문화재 사진공모전, 전통문화강좌 등 국민 모두가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고 찾고 가꾸자는 운동이었다. 1992년 한국문화재보호협회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사진3)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명칭 변경의 주된 이유는 창립 초기의 보호운동 위주에서 국가 위탁사업의 확대를 계기로 협회 수준의 위상을 벗어나 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필요에서였다. 기관의 명칭을 변경하면서 심벌마크(사진4)를 처음으로 제정했다. 매듭은 동심결을 도안화한 것으로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고 보존, 보급하는 데 온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결한 디자인과 단청의 뇌록색으로 전통문화를 함축한 상징물이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90년대는 재단 모태인 한국의집 경영체계를 새롭게 수립하고 1994년 한국의집 음식큰잔치를 바탕으로 『한국음식대관(전 6권)』을 편찬하였다. 1993년 대전엑스포, 1994년 전통공예발전포럼, 1995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착수, 1997년 ‘97문화유산의해’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공공법인으로서 위상을 새롭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외에도 경복궁을 기반으로 한국전통공예미술관(사진5),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사진6)로 전시와 공예교육 기틀을 다졌다.
전통문화의 정수를 지켜나가는 사명감을 담아
2010년 4월에는 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심벌마크가 변화됐다. 신라금관 화염문 장식을 도안화한 새 마크는 전통 태극 문양을 바탕으로사람과 사람, 문화가 상생하고 전통문화와 교감하며, 새로운 미래로의 창조적 비상과 염원을 담고 있다. 생동과 창조로 상징되는 적색과 우주의 중심과 고귀함을 의미하는 노란색은 유구한 전통문화의 정수를 지켜나가는 재단의 사명감을 담고 있다.
2010년대는 2000년 초 시작된 경복궁 수문장교대의식 등 고궁 관광 자원화 사업이 보다 심화하여 종묘대제 등 국가 행사를 수행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2003년 시작된 인천국제공항 전통문화센터는 전통문화 홍보, 보급의 장으로 획기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외에도 2003년 한국문화의집 개관, 2006년 한국의집 전통음식체험관 개관 및 북악산 서울성곽 개방, 2007년 창덕궁 동궐마루 등 고궁 편의시설 개관 및 대한제국 1907 헤이그 특사 특별전, 2010년 유네스코무형문화재국제자문기구 인가 등 국내외적으로 전통문화, 문화재의 보급과 홍보 활동이 창의적으로 확산되었다. 2000년 초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보호를 기반으로 한 활용 개념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재활용 업무를 담당할 과, 국 단위의 조직이 문화재청 내에 설치되었다. 2010년 이후가 되면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사업도 70% 이상이 활용 부분이었다. 기관 내외의 명칭 개정 요구를 반영하여 2014년 8월 문화재보호법을 개정, 한국문화재재단(사진7)으로 변경하고 심벌마크(사진8)도 교체했다. 재단 명칭에서 ‘보호’를 제외하여 문화재보호운동의 창립정신을 훼손하였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전시, 행사, 공연 등 문화재사업이 보호를 기반으로 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상황 변화에 따른 것이다.
2014년에 제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심벌마크(사진8)는 전통 춤사위의 흐드러진 형태를 통해 전통문화를 접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펼쳐진 춤사위는 전통 옷고름과 연결되어 이어지는 형태로 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문화를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드러난 선은 전통건축과 한복의 곡선미를 상징한다.
40년의 흐름 속에 한국문화재재단은 이름값, 역할을 했는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반문해 본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과거 40년처럼 미래 40년도 많은 과제와 난관들이 재단을 향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판에 새겨진 재단 이름에 누가되지 않는 역할이 요구되는 미래 40년이다.
- 글. 안태욱(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