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문화유산의 미래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도약
제언
글. 유동환(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문화재재단, 공공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위상
문화유산 활용으로 러브마크 콘텐츠 생산을!
‘문화재’는 원형 가치가 훼손되면 회복되지 않는 불가역성을 지닌 진정성의 영역이라 쉽게 활용을 논하기 어려운 소재다. 하지만 문화재 관련 법령과 정책과정을 들여다보면, 근거법이나 정책마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 영역, 방법 등이 법률 제정 목적에 따라 제각각이다. 따라서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데, 두 개념을 상호보완한 ‘적극적 활용이 보존’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재 활용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 생산이 필요하다.
‘적극적 활용’의 철학에서 출발하자!
문화재 분야에서 보존과 활용의 개념은 오랜 기간 대립적 개념이었다. 문화재 보존(보호)이 지상의 미션이었던 문화재청에 2009년 문화재활용국이 신설된 이후 조금씩 변화가 생기면서 ‘활용’은 문화재 향유 문제와 부가가치 제고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다른 문화 소재의 활용과 달리 ‘문화재 활용은 문화재가 지닌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나 기능 또는 능력을 살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문화재활용을 위한 정책기반 조성연구>, 2006, 31쪽)’로, 원형가치에 ‘기반해서’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재 활용의 단계를 문화재 가치사슬(value chain)과 연결해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보존 중심(조사, 발굴, 연구, 고증, 보호, 관리 등)’
2단계 ‘보존적 활용(안내, 해설, 교육, 아카이빙, 시각화 서비스)’
3단계 ‘적극적 활용(관광연계, 문화상품, 콘텐츠)’
4단계 ‘퓨전적 활용(산업화, 비즈니스 마케팅)’
공공기관인 재단의 사업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 제3항에 명시되어 있어 이를 단계별로 적용해 보면, 1단계는 문화재 보호·보존사업(조사발굴연구, 국제문화교류), 2단계는 문화재 보급사업(무형문화재전수교육, 문화유산교육), 3단계는 문화재 활용사업(① 공익형: 전통문화체험, 전통의례재현 ② 수익형: 전통음식, 전통혼례, 전통공예전시, 문화상품개발, 문화상품보급-KHmall, 문화공간운영 ③콘텐츠형: 전통예술공연, 도서출판, 한국문화유산채널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 이 규정한 재단의 사업을 매핑해보면, 1단계 사업(소규모발굴조사지원 등)은 줄어들고, 2단계(전수교육, 전통공예건축학교 등)와 3단계(고궁행사, 궁중음식, 문화상품 등) 사업이 증가하고 있다. 사실상 4단계는 재단의 직접사업보다는 민간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서 이뤄야 할 영역이다. 40년의 역사를 갖고 이 단계를 거친 재단은 3단계 ‘적극적 활용’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재단의 비전인 ‘문화재의 미래가치’는 ‘적극적 활용이 보존 보급’이라는 철학을 도입하면서 분명해질 수 있다.
이 ‘적극적 활용’은 유엔개발기구(UNCTAD)에서 제시한 창의산업 4대 그룹의 하나인 ‘문화유산(heritage)’에서 그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재단의 사업 분야가 문화의 창의적 활용을 중시하는 이 하위분류 항목과 겹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문화재청의 다른 기관들(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립무형유산원 등)과의 차별화 지점을 확보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재단의 위상을 결정하는 근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상위분류 | 하위분류(9대) |
---|---|
문화유산(Heritage) | 전통적 문화표현물(Traditional cultural expressions): 예술품, 공예, 축제, 민속의례 등 |
문화적 현장(Cultural Sites): 고고유적, 건축물, 도서관, 박물관, 전시회 등 | |
예술(Arts) | 시각예술(Visual arts) : 그림, 조각, 사진, 고서화 |
공연예술(Performing arts) :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서커스, 인형극 등 | |
미디어(Media) | 출판 인쇄(Publishing and printed media) : 책, 인쇄, 언론 등 |
시청각물(Audio visuals) : 영화, TV, 라디오, 여타 방송 등 | |
기능적 창조물(Functional creations) | 디자인(Design) : 장식 인테리어, 그래픽, 패션, 보석, 장난감 등 |
뉴미디어(New media) : SW, 비디오, 게임, 디지털 콘텐츠 등 | |
창조적 용역(Creative services) : 설계, 광고, 문화, 오락, 창조적 R&D, 디지털 서비스 |
‘러브마크(love mark)’를 남기는
매력 콘텐츠가 필요하다
세계적 광고회사 사치앤사치의 대표이사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고객의 가슴에 남기는 ‘사랑처럼 깊은 자국’을 의미하는 ‘러브마크(Lovemark)’가 충성스러운 소비자를 만든다고 했다. 이 ‘러브마크’는 기존 체험 콘텐츠(experience contents) 단계에 ‘신비감, 감각, 친밀감’을 덧붙여서 ‘유일한(unique)’ 매력 콘텐츠(attraction contents)를 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이 ‘러브마크’를 유발하는 ‘신비감, 감각, 친밀감’이라는 요소는 매력적인‘무대, 인물, 사건’에 의해서 공감되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 과정과 유사하다(케빈 로버츠, <<러브마크 이펙트>>, 서돌, 2007).
이제 문화재를 소재로 진행하는 재단의 사업과 콘텐츠도 단순‘체험’을 넘어선 ‘러브 마크’가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재단의 사업 분야 중 보호·보존·보급사업은 문화재청 산하의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무형유산원,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유사 업무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화재활용사업은 문화재청 산하기관 중 유일하게 수행하는 전문기관이고, 문화재 활용 관련 민간(기관, 기업, 시민단체) 단체와의 경계에 서 있는 기관이다.
재단의 핵심영역인 활용사업 중 공익형 사업인 전통재현사업은 궁궐과 종묘라는 전통시대 최고의 장소에서 최상의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대표 사업이다. 이 재현사업(전통방식 내부 공간 재현사업과 의례재현사업)을 통해서 무대와 소품을 설치하고,이 안에 역사 인물의 행위와 사건을 스토리텔링하고 연출을 더해서 새로운 ‘매력 콘텐츠’를 만들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매년 열리는 18세기 가장무도회는 화려한 전통드레스를 입고 역사 속 인물이 되어 거울의 방에서 춤을 춘다. 참여자는 특정 귀족과 황족이 되어 1인칭 체험을 통해서 러브마크를 체험하게 된다. 베르사유 궁전은 이전에 수년에 걸쳐서 민간후원을 통하여 실내와 가구 등 17세기 왕실 생활상과 뛰어난 예술품을 구현했다. 무대 → 소품 → 인물(의상 장신구) → 사건의 순서로 매력 콘텐츠를 완성해 갔다. 공익형 콘텐츠에 스토리텔링을 더해서 수익형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화재 활용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축하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재는 조사 발굴로부터 활용단계까지 독특한 가치사슬을 가지고 있다. 재단의 사업은 보호·보존 단계로부터 활용단계까지 넓게 사업을 펼치고 있어 문화재 가치사슬로 사업들을 연결하자는 의견이 많다. 당연히 보호단계부터 최종 활용을 전제하여 현장의 정보를 영상아카이브로 만들거나, 단계별로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켜 부가가치 상품을 만드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의 가치사슬은 문화재청과 산하 기관 그리고 민간(영리 및 비영리 법인과 전문가 등)까지 이어진 전체 주체들을 대상으로 적용해야 효과적일 수 있다.
재단의 사업을 세밀히 검토해 보면 위탁사업의 주체에 따라 실행 안정성이 떨어지고, 궁궐과 공항 등 다양한 사업 장소가 분할되어 가치사슬 선순환체계를 이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화재 관련 기관 단체를 가치사슬체계에서 자리매김해 보면, 재단은 ‘문화재 활용’ 사업을 중심(보존사업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으로 가치사슬의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민간 주체들과 시민 대중과의 경계에서 가치를 창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존 보호 관련 지식과 사업 결과물을 수용하여 활용 가치를 제고하는 역할을 총괄하는 ‘플랫폼(platform)’ 역할을 해야 한다.
글자 그대로 플랫폼은 승객이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으로 이해하지만, 디지털지능정보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정보가 오가며 부가적인 수익 창출을 하는 환경과 무대를 의미한다.
플랫폼 유형은 하드웨어(거점, 공정체계) → 소프트웨어(개발 공유, 게임 플랫폼 등) → 서비스(SNS, 트위터, 페이스북 등) → 비즈니스(BM, 아마존, 구글과 애플 스토어 등)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모든 서비스와 콘텐츠는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라고 부르는 ‘글로벌 메가 플랫폼(global mega platform)’ 아래에서 개발·유통·소비되고 있다. 그 배경에 유튜브로 대표되는 모바일 앱을 포괄하는 MCN(Multi-Channel Network) 주도형 디지털 환경이 놓여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동안 재단은 위탁된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간접 수행을 넘어서 문화재 관련 생산자를 매개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 재단 내부적으로는 한국의집 등 많은 문화공간이 물리적 플랫폼이라면, 문화유산채널과 KHmall 등 온라인 서비스 형식의 웹 플랫폼이 있다. 이 두 플랫폼을 통합하여 모바일 적응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 플랫폼을 매개로 문화재 상품, 서비스, 콘텐츠, 마케팅 등이 통합 운영된다.
그리고 이 플랫폼은 지능형·쌍방향·진화형 설계와 운영 개념을 철저히 유지한다. 예를 들어, 문화유산채널은 영상의 단순 검색이 아니라 사용자 수요 기반 지능형 추천, 내부 직원과 외부제작자뿐만 아니라 시민 크리에이터 참여 제작, 마케팅 모델을 제시하는 비즈니스 진화형으로 운영해야 한다. 재단의 모든 사업과 업무가 영상으로 촬영되어 자원화되고 MCN 체제에서 시각화되고 이용되도록 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또한 KHmall의 경우도 개발된 상품을 파는 ‘가게(mall)’가 아니라 개발 공예상품의 재료·공정·디자인·홍보·소비의 과정 모두를 소통 교류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크래프츠 카운슬 네덜란드(Crafts Council Netherlands)를 참고해 보면, 공예가들이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보를 보여주는 Craftmap을 통해서 공예가 상호 간의 협력을 유도하고, 오프라인 공예전시를 주선하고, 장인들이 공예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제작 서비스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 서비스와 콘텐츠를 소통 교류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큰 목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플랫폼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융합과 쌍방향 소통을 전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서 간접 수행을 위한 주체들을 연결하고, 상품(콘텐츠)과 서비스를 활발히 이용하여 자체 수익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미래 가치 창출, ‘전문가가 핵심’이다
현재 재단은 공공기관 유형 중 ‘기타공공기관’이다. 직원의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예산 규모도 급격히 늘어나면서 재단의 위상을 ‘준정부기관’으로 올리자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준정부기관이 되면, 안정적인 예산 확보와 법적지위 확보로 조직 안정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회계 경영의 관리 감독 주체가 기획재정부가 되고, 21개 항목별 회계기준과 경영평가를 받게 된다. 또한 문화재보호기금을 관리하는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을 추천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문화재보호기금법」의 제5조 기금의 용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문화재 보호 보존사업에만 투입이 가능하다. 사실상 재단의 정체성과 지향성의 출발점인 문화재 활용 사업에 투입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기존 사례로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있다. 각 기관의 지정 핵심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구체적이고 특화된 사업 분야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조직 내부의 전문성과 사업 경영능력이 높아야만 한다.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하는 법정 사업의 범위를 존중하면서 구체적이고 특화된 사업 분야를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첫째, 문화재청 산하기관 중 유일한 ‘문화재활용 정책과 사업’의 연구교육 전문기관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정책연구는 수요별 발주에 의해서 이뤄졌다. 이를 중장기적 비전으로 하여 문화재 활용 정책을 제시하고, 해당 영역 민간 부문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사업모델을 교육 전파하는 기능이 도입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 전통 무형문화재를 소재로 세계적인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 개발을 사업 분야로 추가해야 한다. 단 하나라도 재단을 세계 속에 각인하며 보존과 활용사업 전체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는 매력 콘텐츠가 필요하다
셋째, 유네스코 디지털문화유산(digital heritage) 가이드라인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디지털 홍보 비즈니스 분야가 필요하다. 문화유산의 한 분야로서 디지털 문화유산의 IP(지식저작권) 창조, 유통, 관리, 홍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비즈니스 플랫폼 분야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재 재단에는 문화재 보존과 활용의 전 분야에 걸쳐 39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위탁사업의 구조상 비정규직 인력 비율이 높고(2018년 46%), 사업 분야의 새로운 도입이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기존 인력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재교육 기회와 첨단 현장 전문가와의 네트워크 기회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재단의 문화재 활용 전문연구자, 공연 전시 기획창작자, 디지털문화유산 기획서비스 전문가, 홍보마케팅 전문가를 중장기 관점에서 보완하고, 안정화해야 한다.
재단이 제시한 미션은 ‘문화유산의 미래가치를 창조하는 전문기관’이다. 문화유산의 미래가치는 소비자인 국민들과 재단의 주체들 사이의 고민과 모색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주체의 요구 배경이 되는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변화의 문명사적 변화를 잘 검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20년은 재단 창립 40년이 되는 해로서 더욱 주목받고 기대하게 되는 시점이다.
01_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02_Crafts Council Nederland(httpscraftscouncil.nl)
- 글. 유동환(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