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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기획특집 3
소릿길
글.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세상의 길 중에 가장 많은 갈래가 소릿길이다. ‘묵음(默音)’의 길을 뺀 세상의 모든 길이 ‘소릿길’일 터이니. 최근에 소릿길 하나가 확 떴다. 바로 ‘트로트 길’이다. 트로트(가수)가 한때 공중파 케이블 채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먹방을 밀어냈다. 이 트로트는 공중 전파(電波)의 길만이 아니라 여행길인 ‘트로트길’을 만들었다. 트로트 스타가수의 고향을 찾아가는 ‘덕후여행 길’이 그것이다. 송가인의 진도, 임영웅의 포천, 남진의 목포(야시장), 정동원의 하동, 하춘화의 영암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다.
01_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
02_우리 소리를 ‘전파’하는 현대식 기지국,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남도 선율에 올라 남도 풍류를 따라가다_소릿길
문화유산을 따라가는 9개 여행길의 탄생
길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을 잇대어 또 다른 시간이자 공간인 또 다른 길을 만든다. 소릿길도 이 ‘길’ 안에 있다. 트로트길 위에 다른 소릿길이 있다. 전통 소릿길이다. 일제에 눌린 한국 민중의 등골에서 나온 아리랑의 길이기도 하고, 고된 노동 사이사이에 한으로 나오는 육자배기나 민요의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은 짧은 단가(短歌)의 길이고, 한국 정통의 소릿길인 장가(長歌)의 길은 판소리 길이다.
이 소릿길을 포함하는 문화유산을 따라가는 여행길을 최근 문화재청(이하 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이 상세히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청과 재단은 지난 5월 26일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선포하고, 코로나19로 장기화된 피로감과 긴장감을 풀어갈 수 있는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모두 9개의 여행길을 구성했다. 이중 ‘소릿길1’은 전주·임실·남원·고창으로, ‘소릿길2’는 목포·진도·해남으로 이어진다.
무형유산의 현대식 보고(寶庫), ‘국립무형유산원(전주)’
필자는 지난 7월 4일부터 6일까지 이 9개의 길 중 소릿길1을 따라가 봤다. 첫 도착지는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의 ‘현대식 보고(寶庫)’3이지만, 우리 소리를 ‘전파’하는 ‘현대식 기지국’이기도 하다. 400석 크기의 공연장과 170석 규모의 소공연장에 우리의 소리를 무대에 올려 객석을 찾는 내외국의 관람객에게 전하는 곳이다. 8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차세대 무형유산 전승 주역인 이수자들의 소리를 무대에 올리는 일정이 예정돼 있다.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 동안 국제무형유산 영상축제를 진행하여 국내외의 무형유산 영상 상영과 필름콘서트 일정도 있다. 또한 10월 9일과 10일 이틀간 전통연희 판놀음으로 강강술래, 농악, 밀양백중놀이, 줄타기 등 야외에서 즐기는 축제형 전통공연이 열린다.
김일구·김영자 명창의 ‘온고을 소리청’
이 일정만을 챙겨 들고 무형유산원에서 전주 한옥마을로 건너는 전주천 위에 오솔길처럼 놓인 오목교를 지나서 시대의 예인 김일구, 김영자 명창이 살고 있는 고가(古家)이자 소리터인 ‘온고을 소리청’을 찾았다.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김일구 선생이 문 앞까지 나와 계셨다. 선생의 안내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몇 년 전에 찾았던 ‘온고을 소리청’ 마당은 그 전 모습을 벗고, 소리터가 되어 있었다. 두세 명이 함께 올라 소리를 할 수 있는 작은 ‘열린 공연장’이 있었고, 실내도 즉석 공연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봄이나 가을, 혹은 여름에 한옥마을을 찾는 이들을 위해 대문을 열어두고, 마당 안으로 불러 때로는 두 분이,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방문자들을 위한 공연을 연다고 했다. 날이 궂으면 실내 공연으로 대체한다. 고가 마당에서 듣는 부부 명창의 판소리라니. 서양(음악)으로 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탈리아 모데나 저택에서 오페라 라보엠을 듣는 영광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선생님은 소리 인생 중 깜짝 놀랄만한 ‘소릿길’ 한 갈래를 들려줬다. 김일구 선생님의 고향 전남 화순이 ‘국악의 못자리’라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판소리의 성창순·성우향·박송희·조순애 선생, 발탈의 조영숙 선생 외에 대금 명인 한주환, 거문고 명인 오똘남, 피리 명인 오재환·오갑순·오진석, 쇠납 김순종, 아쟁 한일섭 등 셀 수 없는 윗대의 명인들을불러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구성이 가능한 거장들이었다. 선생이 불러 준 명인들을 적어 자료를 찾아 뒤져 보니 국악판에 이름을 남긴 분들만 120여 명에 이르렀다. 가히 화순을 ‘국악의 못자리’라 할만했다. 이분들을 불러내는 선생의 소리 인생은 필자에게는 어느새 국악(인) 강연이 되었다.
선생의 고택에는 선생의 자료와 다른 국악 자료가 가득했다. 전주대사습 장원 휘장이 걸려 있었고,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국악 인생의 길이 그대로 집안에 펼쳐져 있었다. 한옥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당주인에게 “서양으로 치면 이 분이 파바로티입니다. 저는 오늘 파바로티와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라고 식당 주인에게 말했더니 환한 얼굴로 배웅해주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또 다른 소릿길, ‘전주국악방송, 전주 소리문화관’
한옥마을의 한 한옥에 들어서자 국악방송 현판이 보인다. 안에는 ‘ON AIR’라는 글자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방송 중이어서 안으로는 더 이상 못가고 그 옆으로 다시 몇 걸음 걸었더니 ‘전주소리문화관’ 현판이 안내한다. 소리문화관 내의 정자 체험관에서는 초등생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북을 치며 춤추면서 놀고 있다. 부모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 사진 한 컷을 얻었다.
소리문화관에는 ‘국창 오정숙 선생 기념관’이 있었다. 오정숙 선생(1935~ 2008)이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상장, 소품 등이 전시돼 있고, 오정숙 선생의 동초제 판소리 한 대목이 흘러나왔다. 오정숙 선생 특유의 맑고 또렷한 동초제 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남원에서 만난 ‘안숙선 명창 기념관’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안내 지도는 한옥마을의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향교, 풍남문 등 볼거리를 곁들여 안내하고 있었으나 그 곳에 들르지 못하고, ‘판소리 춘향가’의 주인공 춘향의 고을, 남원 땅으로 향했다. 마침,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이나 판소리로 더 자주 무대에 서고, 더 잘 알려진 안숙선 명창의 기념관이 광한루원 후문 남원 예촌에 문을 연 이튿날이기도 했다. 기념관인 ‘안숙선 명창의 여정’은 안숙선 명창의 호 ‘여정’을 따 남원시에서 한옥으로 지어 관리하는 전시관이다. 안 명창이 무대에서 사용한 공연 의상, 악기, 소품, 작품 대본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스승인 만정 김소희 선생과 향사 박귀희 선생의 유품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안 명창의 옛 공연을 홀로그램으로 다시 즐길 수 있는 ‘홀로그램으로 만나는 명창’, ‘판소리 영혼을 울리다’ 등의 코너도 마련돼 있었다. 그 옆 민살풀이춤의 명무 조갑녀 기념관 관람은 덤이었다. 이곳을 둘러보고 남원에서 활동 중인, 올해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가 된 이난초 선생의 제자 임현빈과 강민지를 만났다. 이들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지리적 기준이 되는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은 소리꾼들이 자주 찾는 소리 공부 장소라고 귀띔했다. 지리산 계곡 ‘뱀사골’과 동편제 발원지로 명창들이 득음한 ‘구룡계곡’, ‘달궁계곡’이라고 일렀다. 소리 공부길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소리 여행길 여정을 따라 송흥록·박초월 명창의 생가가 있는 지리산 자락 남원 운봉 국악의 성지로 향했다.
동편제탯자리에서되새긴명인들의옛추억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긴 오르막, 득음의 길처럼 높디높고, 돌고 돌았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았는데 몇 차례를 ‘외도(外道)’했다. 몇 걸음 더 디디면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오를듯한 고개를 넘어 내려서는 곳에 자리한 국악의 성지,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 들어섰으나 국악의 한 가락은커녕 적막강산이었다. 자동차 연료계기판은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데 주유소도,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마음의 불안은 위로 커져만 갔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송흥록의 생가와 박초월 생가다. 그들의 소리는 옥당으로, 제자들은 산천을 날았으나 생가는 적막이었다. 동편제 판소리의 탯자리, 국창에 국창을 낳았던 곳은 초하에 소슬했다. 이 뿌리에서 임방울, 김연수와 정광수, 박동진과 김정문, 박봉래와 김소희를 낳고 판소리 중흥을 맞았을 터인데. 생가에 세워진 송흥록 선생의 동상은 애처로웠다. 그 소슬함을 안고 운봉에서 지리산 남서쪽 구례, 순창, 곡성, 담양 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왔어도 담양에 이르니 저녁 8시가 훌쩍 넘었다. 사위는 어두워져가고 있었으나 판소리의 중흥지인 담양군 남면(지금은 가사문학면) 지실마을 초당을 거를 수는 없었다. 박종원과 박동실(1897~1948)이 기둥이 되어 한승호, 한갑득, 한애수, 김소희, 박후성, 김녹주를 길렀던 곳이다. 가수 김정호의 외가이자, 아쟁의 명인 박종선 선생의 본가이기도 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가사문학관 뒷길로 이어진 곳에 박씨 일가가 음식점을 하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초당은 그 형태를 완전히 지웠다. 희미한 옛 그림자에 명인의 이름들만 되새기며 되돌아 나왔다.가야금 명인 김창조 기념관이 있는 영암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필자의 본가가 있는 고향이어서 슬쩍 들러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소릿길2에 들어 있는 목포해양유물전시관까지 들릴 셈으로 본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김창조 기념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로나19는 기념관을 굳게 닫게 했다. 해양유물전시관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임시 휴관과 개관을 오가는 상황이었다.
판소리 고장에서 흠뻑 느낀 여름 정취
목포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판소리의 고장 고창’으로 향했다. 신재효 생가를 제외한 판소리 박물관과 판소리 전수관은 모두 닫혀 있었다. 고창읍성 입구에 있는 신재효 기념비와 김소희 기념비가 소릿길의 여행자를 맞았으나, 박물관과 전수관은 차단돼 있어 판소리 유물을 한 점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고창을 지나다 푯말만 보고 지나쳤던 김소희 명창 생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더니 12km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대로 찾아갔더니 작은 마을에 소박한 초가가 여름비에 젖어 여름 정취를 내밀었다. 이 작은 초가에서 미국 카네기 홀을장악한 소리가 나왔다니 ‘초현실’ 같았다. 이 아담한 초가를 잘 단장하여 봄, 여름, 가을에 민박집으로 활용한다면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취지에 부합하겠다고 생각하며 가느다란 빗속으로 걸어 나왔다.
03_ 남원 광한루원
04_ 자신의 전수관 앞에 서 있는 김일구 선생
05_ 김소희 선생 기념비
06_ 고창 판소리 박물관
07_ 고창 신재효 고택
소릿길1 기본코스 전주·임실·남원·고창
국립무형유산원, 전주한옥마을, 필봉농악전수관, 광한루원, 송흥록·박초월 생가, 고창판소리 박물관, 신재효·김소희 생가.
소릿길2 기본코스 목포·진도·해남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진도향토문화회관, 소포전통민속전수관, 국립남도국악원, 강강술래전수관, 우수영국민관광지.
- 글.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