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기획특집 4
서원의 길
글. 남민(인류문화사 여행작가)
세계인의문화유산, ‘배움의길’ 서원을 걷다
2019년 우리나라 서원 중 총 9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인의 유산으로서 당당한 가치를 지니게 됐다. 서원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도 저마다 위치한 지역과 모시는 선현, 학풍에 따라 개성을 간직했기에 ‘서원의 길’을 걸으며 진정한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새 시대의 요청 ‘엘리트 양성’
공자가 55세 때 제자들과 천하 주유를 시작했다. 작은 조국인 노나라를 떠나 맨 먼저 이웃 위나라로 들어갈 때 많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제자 염유가 물었다. “백성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는 “넉넉히 먹고 살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선 배를 채우고 나면 사람으로서 도리를 알고 처신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왕건으로 시작한 고려 사직이 무신정권에 이어 원나라 지배로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여기에 고려 조정과 함께했던 불교마저 타락했고 왕권은 한없이 실추됐다. 고려는 더 버텨나갈 힘을 잃었다. 이쯤 되면 으레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기운은 이성계에 의한 조선의 개국을 불러왔다.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가 바뀌었으니 과거와의 결별이 필요했다. 통치 시스템, 군신 관계, 혼란스러운 생활상을 새로운 질서로 대체해야 했다. 따라서 불교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그 자리에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하는’ 질서, 공자의 유교가 조선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됐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회 규범과 윤리의식, 지식이 필요했고 그것을 성리학에서 찾았다. 조정에서는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 지식인을 많이 양성해야 했다.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만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인재가 꾸준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앙에서는 성균관을 통해 인재를 양성했지만, 지방에서는 지방관이 교육을 계도하는 임무도 맡아야 했다.조선 개국 후 150년이 지난 1541년 성리학자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를 몹시 흠모해왔다. 마침 그가 부임한 곳이 주희의 주자학을 들여온 회헌 안향의 고향이었다. 주세붕은 자신이 흠모하던 주자학과 이를 도입한 안향을 기리고 지방 유생들에게 선현들을 본보기 삼아 주자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을 꿈꿨다.
서원의 핵심은 ‘제향-강학-교류-건축문화’
주세붕은 1543년 주희의 백록동서원을 본떠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이 땅에 최초로 서원이 탄생했다. 주자학에 심취한 주세붕은 자신의 롤 모델을 흠모하다가 새로운 교육기관 창설이라는 개척자가 된 것이다.
이어 1548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했다. 퇴계는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자신의 시대에 꼭 필요한 교육시설임을 절감한다. 예법을 알고 인격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하려면 좀 더 투자가 필요했다. 그는 경상도 감사를 통해 조정에서 서원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도록 요청했다. 퇴계의 위상을 말해주듯 명종 임금은 대제학 신광한이 지은 글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旣廢之學 紹而修之)’에서 ‘소수(紹修)서원’이란 친필로 사액을 내렸다. 백운동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소수서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나라에서 세금을 면해주고 책과 노비를 지원해주는 파격적인 시스템이다.
관학인 향교나 성균관과 달리, 민간에서 창립하고 나라에서 지원하는 새로운 교육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서원으로서는, 사액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교육기관이라는 위상도 갖는다.
서원의 핵심은 제향과 강학(교육), 교류다. 주세붕이 처음 서원을 세울 때 안향을 기리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추모로 끝나는 단순한 제사 기능이 아니다. 닮고 싶은 선배 지식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본받아 열심히 수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니 제향에는 교육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이후 서원은 후학들이 스승 사후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게 되었고 그 학맥을 이어나가는 형식으로 무수히 세워졌다.
제향 기능은 개화기 신학문이 들어와 서원이 문을 닫은 후에도 매년 봄·가을 향사를 지내왔는데 오늘날까지 중단된 적이 없다. 이것은 세계인도 놀라워하는 한국만의 전통문화다.
강학은 스승이 유생들에게 먼저 인격 수양을 지도했고, 나아가 현실적으로는 과거시험을 통해 나라의 동량으로 키우는 역할을 했다. 좋은 스승을 찾아 그의 후학이 되는 것은 제자로서 큰 영광이었다. 각지에서 모인 훌륭한 유생들은 서원을 통해 서로 학맥과 인맥을 형성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간다. 이러한 인맥과 학맥을 중시하는 풍조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소수서원 이후 속속 서원이 세워지면서 건축양식도 하나의 전형적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소수서원이 동학서묘 배치인 데 반해, 얼마 후 세워진 남계서원은 전학후묘로 강학공간을 앞에 세우고 제향공간을 뒤쪽 높은 지대에 배치해 제향 공간의 격을 높였다. 서원 진입공간에는 2층 누각을 도입했고, 강학공간 앞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라는 기숙사가 배치되는 서원만의 독특한 건축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후 서원들은 대체로 남계서원의 예에 따라 건립됐다.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전통문화다.
01_ 달성 도동서원
02_ 안동 도산서원
03_ 함양 남계서원
04_ 장성 필암서원(수업장면 재현)
05_정읍 무성서원
06_ 논산 돈암서원
하버드대에 93년 앞선 고등교육 열망
숙수사 터가 있는 순흥 땅. 이 고장 출신 회헌 안향은 어릴 때 숙수사에서 공부를 한 후 과거에 급제하고 아들, 손자까지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다. 훗날 안향은 원나라 방문 때 주자서를 접하고 손수 베껴 들여와 이 땅에 처음 주자학을 도입했다. 덕분에 고려 후기 정몽주, 정도전 등은 주자학으로 대변되는 성리학자가 되었다. 개국파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하면서 유교 국가를 지향한 것도 여기서 기인했다.
안향의 고향 순흥은 남순북송(南順北宋)이라 하여 한수 이남은 순흥도호부, 한수 이북은 송도라 할 만큼 대표 도시였지만, 하룻밤 새 역모의 도시로 낙인찍혀 불바다가 되었다. 1457년 세조는 동생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단종복위를 꾀하자 처형하고 영월에 유배 중이던 단종까지 사사해버렸다. 이때 순흥도호부 30리 안의 사람은 보이는 대로 도륙하고 집도 모두 불태운 후 순흥 땅도 풍기와 영천(지금의 영주), 봉화로 쪼개 도시 하나를 공중분해 시켰다. 폐허가 된 땅 순흥 숙수사 자리에 80여 년이 지나 유학의 교육기관 서원이 들어선 것이다. ‘이어서 학문을 닦게 하라’라는 말은 이렇게 탄생했다.
주세붕이 1543년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은 당시에 우리에게도 이미 고등교육 욕구가 팽배했음을 말해준다. 이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1636년 창학)보다 93년 앞선, 조선 최초의 사립대학인 셈이다. 조선의 지식인 사회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우리는 왜 서원으로 가야 하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서원은 단순히 옛 유산으로서의 가치만 갖는 게 아니다. 서원은 근본적으로 자기 수양을 추구하는 위기지학을 지향했다. ‘먼저 사람이 돼라’라는 인성교육의 현장이다. 오늘날 모두가 1등만 고집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만 서려고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겪는 갈등과 분노, 절망, 상처를 멀리하고 참된 삶,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다. 서원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이 그랬듯이 선현들은 좋은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해 자기 수양과 함께 후학 양성에 일생을 보내곤 했다. 관직과 재물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인격 완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공자도 “인생이란 올곧음인데 그게 없는 삶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일 뿐이다”라고 설파했다.
선현들이 그랬듯이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서 잠시 벗어나 가장 자기다운 삶을 향해 구도자적 심정으로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곳이 서원이다. 서원에서 배려와 소통, 화합, 나눔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되는 진정한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더 크게는 인류의 평화라는 거대한 이상을 품을 수도 있다. 우리 서원이 갖는 잠재적인 위력은 21세기에 꼭 필요한 인재교육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주 소수서원,안동 도산서원,안동 병산서원,경주 옥산서원,달성 도동서원,함양 남계서원,장성 필암서원,정읍 무성서원,논산 돈암서원.
- 글. 남민(인류문화사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