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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
왕가의 길
글. 한용태(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군주의 마음으로 살피고,
아비의 마음으로 걸어온 길
왕가의 길
조선 역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왕실의 유적과 유물로 만나볼 수 있는 왕실 이야기는 왕가의 길 2가지 코스로 조성돼 관람객들을 반긴다. 특히 창덕궁과 종묘, 남한산성과 수원 화성을 거쳐 융건릉까지 하루에 모두 돌아보는 왕가의 길1 코스는 봄에는 새잎이 돋아 생기를 띠는 창덕궁과 종묘를 살펴보고, 신록이 절정인 여름에는 남한산성과 수원 화성의 성곽길을 걸으며 땀을 식히고, 가을에는 솔숲에서 맑은소리로 우는 다양한 새소리와 함께 동쪽에 있는 융릉, 서편에 건릉을 조용히 참배하는 등 사시사철 다양하고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01_ 창덕궁 선정전
02_ 창덕궁 후원(사진제공. 조인숙)
자연을 조화롭게 품은 동궐(東闕)
조선 개국에 맞춰 지어진 법궁(法宮) 경복궁에 이어 1405년(태종5년) 세 워진 창덕궁은 이궁(離宮)이지만, 유교예법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짓기보 다 자연지형을 살려 독특한 형태로 조성됐다. 건축과 조경이 조화를 이 루며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담아낸 문화유산으로, 궁궐로는 유일하게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후원의 조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왕실 정원으로서 외국인에게 매력 넘 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창덕궁은 왕과 신하들이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외전과 왕과 왕족들 이 개인적 공간으로 사용한 내전으로 구성되었는데, 외전의 시작인 돈화 문은 지금 남아 있는 궁궐 출입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문이다. 창덕궁을 상징하는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은 왕의 즉위식이 열리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나라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장소로서 외관은 2층으로 보이지만 실내는 하나로 트여 있어 웅장하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보 다 작은 규모지만 소박한 옥좌와 일월오봉병, 아름다운 문양의 천장은 조 선 왕조의 위용과 뛰어난 예술성을 그대로 표현한다.
인정전은 태종 때 처음 지어진 뒤 임진왜란과 화재로 세 번이나 잿더미로 변하는 재난을 겪었다. 오늘날의 인정전은 1804년에 지어진 네 번째 건축 물이며 다른 궁궐에 비해 자연과 인공미의 조화가 아름다운 궁궐이다. 돈 화문 안쪽 회화나무를 비롯해 궁궐 곳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 다래나무 등 명품 나무와 정자, 연못이 있어 관람객들은 대형식물원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궁궐에서 맛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 뿌리를 온전히 모시는 공간,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왕후), 추존된 왕(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신성하고 엄숙함이 느껴진 다. 특히 정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100m가 넘는 길이와 지붕의 독특한 선을 통해 이곳이 누구를 위해 어떤 의미로 묵묵히 존재하는지를 생각하 게 된다.
종묘는 1394년(태조 3년)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 완공했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 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현재 정전 19실에 49위, 영녕전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 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199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이 어 2001년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 되어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게 됐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거행하는 종묘대제는 여느 궁궐행사보다 격조 높고 장엄하여 관람객은 물론 영상으로 보는 사람까지 제례가 진행되는 내내 정신을 집중하여 보게 하는 힘이 있다. 특히 단풍이 곱게 든 날 외대 문을 거쳐 재궁과 향대청·공신당·칠사당을 둘러보면 도심에서 사색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나라의 중추인 한양 방어를 위한 성곽, ‘남한산성’
사적 제57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은 7세기부터 19세기 성곽축성기술을 발달 단계별로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남한산성 특징의 하나는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춰 조선의 임시수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고 이듬해 광주부의 읍치(邑治, 행정중심지)를 산성 내부로 옮기면서 산성리의 인구는 폭증하게 되는데 한양에 인접한 소비도시에서 19세기 말 행정구역개편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행정도시의 기능과 위용을 잃어버리며 한적한 마을로 변해갔다. 성벽과 장대, 대문, 승영사찰터 등이 남아있는데, 지속적인 보수와 개축은 물론 통치 경관요소로서 좌전, 우실, 행궁, 좌승당, 인화관터 등의 읍치 시설도 재건되거나 복원, 수리가 이뤄졌다. 둘레가 12km가 넘는 토대형 산성으로 2010년 1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2차례 예비실사, 이어진 현지실사를 거쳐 2014년 6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등재가 결정됐다.
경기도 광주, 하남, 성남시에 걸쳐 409ha의 광대한 면적과 12.4km 길이에 이르는 성곽은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군락지를 이루는데 이것은 산성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남한산성 금림조합이 귀중한 생태문화자원 숲을 보호하고자 산림감시원을 두고 90년간 지켜온 노력 덕분이다
조선의 독창적인 계획도시, ‘수원화성’
1794년(정조 18년) 2월에 시작하여 2년 6개월 만에 완공을 이룬 수원화성은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집약하여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백미로서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 성곽의 장점을 참고하여 건설된 도시 성곽이며,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화성 성역(城役 )의 총지휘는 정조 개혁정치의 참모였던 번암 채제공이 맡고, 다산 정약용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감독했다.
수원의 행정청인 읍치(邑治)는 지금의 화성시 태안면 송산리 화산(花山) 아래 있었는데 정조의 명에 의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이장하며 수원읍과 민가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팔달산 아래 지금의 수원으로 옮긴 후 읍명을 화성(華城)이라 하였다. 화성 축성공사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축성 역사에 동원된 공장(工匠)이 1,280명, 연 동원 일수는 37만 6,342일, 축성에 사용된 벽돌은 모두 69만 5,000장이었다. 수차례의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피해를 겪었지만 축조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의궤가 있어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 가능했고,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수원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한 이후 매년 10월에 열리는 ‘수원화성문화제’를 통해 정조대왕의 효심과 부국강병의 꿈을 선보인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 융건릉
융릉은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 1735~1762, 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獻敬王后) 홍씨를 합장한 능이다.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健陵)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는데 합장묘인 융릉의 봉분 아랫부분은 12지신상 대신 목단과 연꽃 문양이 양각된 12면의 병풍석이 감싸고 있다. 다른 왕릉에 비해 조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정교한 솜씨를 보여준다. 난간석은 없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있다. 석물로는 상석 1좌, 망주석 1쌍,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1쌍, 문인석 1쌍, 팔각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배치되었다. 정조가 융릉을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동작나루에서 남태령을 넘어 과천을 통해 수원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들나루를 건너 노량진에서 장승배기, 금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동쪽에 있는 융릉과 서편에 건릉 주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뤄 오전에 이곳을 방문하면 다양한 새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참배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를 집중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왕가의 길1 코스를 통해 군주의 마음으로 살피고 아비의 마음으로 걸어온 길의 의미를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단풍이 곱게 든 날 외대문을 거쳐 재궁과 향대청·공신당·칠사당을 둘러보면
도심에서 사색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03_ 사적 제57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 동문
04_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된 종묘제례악
05_당대 최고의 기술로 완성한 수원화성의 화홍문
06_ 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獻敬王后) 홍씨를 합장한 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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