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참 만남 인터뷰
진행.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정리. 이광이(작가)
‘비손’의 마음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다
“우리가 떠나온 곳도 ‘비손’이고, 가려고 하는 곳도 ‘비손’입니다. 우리의 음악은 늘 ‘비손’ 안에 있을 것입니다.” 비손은 비는 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잠에서 깨어 첫 우물을 길어다 소반 위에 올려놓고 간절히 빌던 어머니의 손이 비손이다. 자연 앞에서 미약한 인간이 신성한 무엇엔가 의지하여 소망을 이루려고 했던 태초의 간절한 몸짓. 그 소박한 의식에 장구와 북, 징과 피리 같은 악기가 더해져 리듬을 갖게 되고, 소리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의례로 발전한 우리소리 것이 굿이다. 모든 예술은 비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전하는 우리소리 ‘바라지’의 강민수 대표를 만났다.
진도 씻김굿에 뿌리를 둔 바라지 음악
강민수 대표(42·소리/타악)는 “우리의 출발지는 진도 씻김굿이지만, 그보다 앞선 곳은 어머니의 비손”이라고 했다. “씻김굿은 이어주는 것입니다. 단절된 것을 이어주는 것,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저녁에 시작하여 아침에 끝나니 음과 양을 잇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떠나는 자에게는 진혼(鎭魂)하고, 남은 자들을 위해서는 축원(祝願)을 하면서 분리된 양자를 이어주는, 그 간절한 마음 깊은 곳에 비손이 있습니다.
‘바라지’는 2009년 결성된 7인조 국악그룹이다. 바라지는 뒷바라지, 옥바라지하듯이 누군가를 알뜰히 보살피는 것을 뜻하는 우리말이기도 하고, 국악에서 판을 끌어가는 주된 소리에 덧보태지는 반주자들의 즉흥 뒷소리를 말한다. 이 그룹은 진도 씻김굿에 뿌리를 두고 독특하면서 실험적인 음악양식을 선보이고 있다. 강 대표는 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 선생의 아들이다. 아쟁을 맡은 조성재 씨는 진도 씻김굿 무형문화재 송순단 선생의 아들이고, 트로트 가수 송가인(조은심)의 오빠다. 소리를 하는 김태영 씨 역시 부친이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씻김굿 전수 조교이며, 대금을 부는 정광윤 씨는 본인이 씻김굿과 삼현육각 전승자이다. 피리를 부는 이재혁 씨는 황해도 강령탈춤 전승자이다. 여기에 판소리 춘향가 전승자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 무대에 섰던 김율희 씨, 가야금 김민영 씨를 더해 일곱이다. 이처럼 멤버들이 국악 무형문화재의 2세이거나 본인이 전승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예종을 나온 강 대표를 빼고는 모두 중앙대 한국음악과 출신이다.
시대의 언어로 시대의 이야기를 담다
“군 제대 후에 학교 친구들 몇몇이 모여 소리도 하고 사물놀이도 하고 그러던 차에 교수님이 이왕 하려면 제대로 팀을 만들어서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래서 뜻있는 멤버들을 모아 ‘바라지’가 결성된 것입니다.” 조성재 씨의 말이다. 그는 “이 팍팍한 시대에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하고, 슬픈 일은 서로 위로하고, 만복장수를 기원하는 음악,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하는 음악을 해보자 그런 취지였어요. 사실 전통음악이 200~300년 전 그 시대의 음악 아닙니까? 그것을 그대로 하기보다는 그 바탕 위에서 우리 시대의 음악, 지금의 언어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국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교수님과 우리가 의기투합한 것”이었다면서 나름의 음악 철학을 덧붙였다.
여기서 교수님은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한승석 교수를 말한다. 한 교수는 국악계에서 ‘작창(作唱)의 신(神)’으로 통한다. 작창은 우리 소리를 창작하는 것으로 작곡과 편곡의 중간 정도의 개념이다. 한 교수는 서울법대 출신으로 대학 시절 국악동아리에 들어간 뒤 법전을 놓고 장구채를 잡은 사람이다. 이광수·김덕수 선생에게서 비나리와 사물놀이를, 안숙선·성우향 명창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사사하는 등 판소리와 타악, 굿 음악까지 두루 섭렵한 싱어송라이터다. 예술 감독으로 ‘바라지’를 이끌고 있는 그는 단원들과 사제 간이면서 도반이고, 또 고향 선후배이기도 한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바라지’는 2011년 광주 5.18 기념공연인 ‘자스민 광주’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무대는 광주의 5월이 중동 자스민 혁명과 연대하는 메시지를 담아 남도의 씻김굿과 시나위, 타악, 무용 등으로 구성한 총체극이다. 공연은 대단한 호평을 받아 그해 8월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별 5개의 최고등급을 받았다. ‘바라지’는 이듬해 국악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문광부 주최 ‘천차만별 콘서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내 공연과 중동, 미주, 유럽 등 해외공연을 거치면서 정상급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구심점이 되어
첫 음반발매 공연은 공연 이름도 비손이고, 곡 이름도 비손이고, 음반 이름도 비손이었다. “우리는 이 비손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왔습니다. 어머니의 정한수 염원 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사서삼경, 팔만대장경이 다 들어있습니다.” 강 대표는 “우리는 무형문화재 전승자인 부모로부터 얼마의 재능을 타고 나와 그것을 전승하고, 시들어가는 국악을 다시 꽃피우고, 전통음악을 다시 세우고, 입신양명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세상에 나왔습니다만, 진정 우리의 선대들이 바라는 것은 항상 ‘비손’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면서 곡명도, 음반명도, 공연명도 비손인 것은 그런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매일 새것들은 쏟아져 나오고 옛것들은 밀려가는 현실에서 예술과 대중의 거리, 선대와 후대의 간격,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바라지’는 그 한 가운데 있다. 강 대표는 “느리게 가지만 비손의 마음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바라지’는 ‘선대로부터 몸으로 내려오는 유산’이다. 그러므로 그 이음은 그들에게 숙명 같은 것이다. ‘바라지’는 첫 음반 발매 5년 만인 올해 5곡의 새 곡을 실은 음반 2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 진행.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정리. 이광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