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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기와의 하늘과 선, 인천국제공항에서 날아오르다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던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한적함을 넘어 적막감이 짙은 그림자 위에 겹쳐 앉아 있었다. 이런 스산한 분위기를 눅이는 돌올한 전시 하나가 마련됐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 육관광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시티플러스가 후원한 ‘하늘, 선/국가무형문 화재 제와장 보유자 김창대 전(展)’이다. 이 전시는 제2터미널 3층 출국장 환승객 라운지 바로 옆에 있는 ‘전시 공간’에서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나 대지(裸垈地)’로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전시공간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유휴공간을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다!
공항이 북적이던 시절, 그 북적임을 살짝 눅이기 위해 비워두며 승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이기도 했고, 가끔 면세점들의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했 던 공간을 새로 꾸리는 일은 전시 외에 또 다른 작업이다. 전통공예 전시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이지은 큐레이터가 이 일을 맵시 있게 해냈다. 이 큐레이터는 160㎡(약 50평)쯤 되는 이 공간을 크게 3개로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조명도 없고, 전시벽도 없고, 한 면 전체에서 유리창으로 햇빛 만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 큐레이터는 공간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전 시공간을 3개로 구획했다. <아일랜드 1 기둥 공간>, <아일랜드 2 공간>, <최종하 작가 나무조각, co-work>로 나눠 각 공간에 각기 ‘구성미’를 부 여했다. <아일랜드 1 기둥 공간>, <아일랜드 2 공간>의 평면도는 공교롭게 태극문양을 위아래 바꿔 놓은 듯해 구성에 의미와 재미도 더했다.
격을 살린 공간 구성으로 기와의 아름다움을 살리다
<아일랜드 1 기둥공간> 구성의 핵심은 3m가량의 목재기둥. 출국장 층고 가 비행기도 날아오를 만큼 높아 전시좌대로 기능을 살리는 십자가형 목 재기둥을 세움으로써 전시공간의 공간적 허함을 보완했다. 이 기둥에 올 린 전시물은 잡상. 이 잡상은 기와 잡상이 아니라 목재 잡상이다. 목재 기 둥에 목재 장상을 올린 건 재질의 동질감을 주기 위한 ‘재치’였다. 목재 기 둥에 기와 잡상을 올렸다면 좌대 위의 단순한 전시였을 터였다. 목재 기둥 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둥근 전시좌대를 놓고 오른편에 사각 좌대로 구성 한 섬세한 아이디어도 이 전시를 돌올하게 했다. 왼편 둥근 전시 좌대 앞쪽 에는 숭례문 복원공사 때 복원했던 토수(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추녀 끝에 끼우는, 용이나 도깨비 머리 모양의 기와)를 올렸고, 중앙에는 발해에서 제작되어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진 아주 큰 ‘발해 재현품’ 귀면기 와를 전시했다. 그 뒤쪽에는 작은 발해 재현품 귀면기와를 전시해 변화를 줬다. 목재기둥 오른편 앞 쪽에는 경기도 수원 화성 팔달문 복원품 잡상과 홍천사 복원품 용두(집의 합각머리나 너새 끝에 얹는, 용의 머리처럼 생긴 물건)를 놓았고, 바로 뒤쪽 좌대에는 팔달문 복원품 잡상 하나만 올렸다. 맨 뒤쪽 좌대를 비스듬히 놓고 그 위에 창덕궁 부용정 복원품 취두(지붕마 루 중에서 격식이 있는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단에 얹어놓는 장식기와)를 놓아 전시구성의 각기 다른 ‘리듬’으로 격을 더했다.
<아일랜드 2 공간>은 <아일랜드 1 기둥공간> 보다 좁게 구성해 공간의 지 루함을 눅였다. 맨 뒤쪽 긴 사각 좌대를 나눠 좌대 4/5 정도의 넓이에는 숭 례문 복원품인 잡상을 전시했고, 좌대 1/5 넓이에 창경궁 복원품 용두를 전시했다. 앞쪽 정사각형 좌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재현품인 귀면기와를, 그 옆 또 다른 정사격형 좌대에는 암키와와 수키와 그리고 망와(용마루의 끝에 끼어 그 마구리를 장식하는 암막새)를 함께 전시했다. 이곳에 전시된 수키와 암키와 망와는 모두 숭례문 복원품이다. 관람객들은 숭례문 지붕 에 올라가지 않고도 숭례문 기와지붕의 기와 구조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제3공간’이라 할 <최종하 작가 나무조각, co-work>는 전시구성의 또 다 른 흥미로운 요소다. 기와를 제작할 때 쓰이는 와통 형태의 목재 조각품 을 전시좌대로 활용해 기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전시공간이 다. 이 와대는 최종하 조각가의 건축적 구조물을 활용하여 전통기와 좌대 로 그 기능을 ‘부제화(副題化)’하는 한편 전통기와와 결합시켜 한국 목조건 축과 기와의 연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나의 작품이다. 한 조각가의 건축적 구조물 조각품이 작품으로서 역할을 숨기고, ‘하늘/선’ 기와전의 좌대 역할로 기능과 의미, 변화를 꾀했고, 이 변화는 전시장의 ‘이색(전시) 공간’을 연출해 전시에 재미를 더했다. 같은 크기의 기다란 직사각형 목재 구조물 좌대는 나란히 놓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목조 구조물 좌대는 살짝 비틀어 공간 구성의 균형을 잡았다. 좌대에는 경복궁 향원정 기와지붕 일 부를 재현하여 전시했다. 긴 직사각형 목조 구조물 좌대에는 재현한 백제 통일신라 조선시대 수막새를 전시하여 시대별로 수막새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또 하나의 직사각형 목조 구조물 좌대에는 복원한 여러 형태의 조선시 대 암막새를 전시해 같은 시대 암막새의 형태와 비교·관람하도록 했다.
기와의 시대별 특징과 종류를 한눈에
기와의 본래 기능은 건축물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지붕에 씌워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 방지다. 동시에 한옥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미적 기능도 연출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기능을 갖는 기와를 고 대부터 지역마다 각각의 기후에 맞는 가옥을 지으면서 그와 걸맞게 특색 있도록 만드는 풍습을 이어왔다. 이렇게 이어져 온 전통기와는 요즘 기계 로 찍어내는 딱딱한 공장제 기와와 달리 공극(토양 성질의 틈)이 많아 가볍 고 ‘숨 쉬는’ 기능을 갖고 있다.
비나 눈이 오면 전면적으로 골고루 물을 흠뻑 머금었다가 날씨가 개면 똑 같이 증발시키는 전통기와는 날씨 변화에 따라 동시에 젖었다가 말랐다 하며, 추위와 더위에 깨지지 않고 수백 년을 견디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 기에 잘 구워진 기와에는 소나무 연기로 그을린 다양한 은회색 빛깔의 잘 갈아진 농묵이 그려낸 듯한 농담(濃淡)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기와의 종류는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주로 그 기능에 따라 나뉜다. 평기와 바닥기와 여와(女瓦), 자와(雌瓦)라고 부르기도 하는 암키 와는 흙으로 구워 만든 큰 원통을 세로로 3등분 또는 4등분한 것으로, 좌 우측이 중심보다 치켜 올라가 약간 휜 모습으로 수키와 밑에 놓여 기왓골 을 형성하여 눈과 빗물을 차단해 그 흐름을 돕는 역할을 한다. 수키와는 흔 히 원와(圓瓦)·부와(父瓦)·남와(男瓦)·웅와(雄瓦)라고 부른다. 수키와 는 흙으로 구워 만든 작은 원통을 세로로 2등분한 것으로 두 암키와 사이 에 생기는 틈새 위에 엎어놓아 기왓등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이외에 암 막새(암키와의 끝에 장방형의 드림새가 부착되어 있는 무늬가 새겨져 있 는 기와), 수막새(목조 건물의 처마 끝에 달아 장식하는 와당), 귀막새(처 마의 모서리를 덮는 비흘림이 달린 막새) 등 막새기와가 있다. 이는 지붕 을 이루는 주요 기와들이다. 그밖에 다양한 종류의 장식기와로 용두, 취 두, 치미(전각이나 문루 등 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기와), 귀면(추녀 끝에 잇대는 네모난 서까래에 귀신의 얼굴을 그린 장식 기와), 잡상, 망와 등이 있다.
이들 기와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건물과 건축에 맞게 사용했다. 장식 기와는 말 그대로 한옥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위한 액세서리거나 집주인의 염원을 담는 기물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기와들은 기원전 1세기 한반도 북반부에 목조기와집에서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시대별 특색을 지닌 다양한 문양 기와들로 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연화무늬나 신라의 얼굴무늬 수막새 등 장식적 인 문양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나 오히려 조선시대 기와는 단순하고 소박 하다.
이번 전시 ‘하늘, 선/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보유자 김창대 전(展)’은 다양 한 기와 종류, 시대별 기와의 형태, 숭례문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 그리고 여러 사찰 건축물에 쓰였던 기와를 복원한 것으로 구성되어 기와에 대한 일반 지식을 넓힐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 기와의 무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하다
이번에 전시된 기와들은 모두 제와장 김창대 보유자가 전통방식으로 재 현한 기와로, 기와의 기능 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김 창대 보유자는 1세대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보유자 고 한형준 선생 (1929~2013)의 수제자(首弟子)이자 ‘수제자(手弟子)’로 그의 가르침 아래 전통수제기와를 전승하고 있다. 김창대 보유자는 2008년 화재로 소실 된 국보 제1호 숭례문 복원작업 때 기와를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창대 보유자는 “전통 수제기와 제작은 원료, 성형, 기물, 특히 가마 소성 시 불의 상태는 날씨와 주변 여건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아 때 로는 현대요업기술과 측정기구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고 한형준 선생께서는 매 순간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장인의 직감(直感)으로 작은 부 분까지 조절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저에게 전수해 주셨다. 이런 무의식의 직감은 전통건축물에 남겨진 다양한 기와 질감들을 만들어주고 풍부한 느 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큐레이터는 “현재는 공항을 찾는 승객들이 손으로 꼽을 만큼 적지 만, 한국문화재재단 기획과 인천국제공항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기획전 을 통해 그들에게라도 한국 전통 기와의 무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고, 큰 소용이 없던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꾸밀 수 있어서 기쁘다”는 전시 소감을 밝혔다.
01_ 기와,하늘-선 전시장 전경
02_ 재현한 기와 앞에 선 김창대 보유자
03_ 수원화성 팔달문에 복원한 잡상
04_ 기와,하늘-선 전시 평면도
05_ 기와,하늘-선 전시장 부분
- 글.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 전문위원) -